정말, 이번에야말로 심장이 바닥에 떨어져 죽는 줄 알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다. 아니, 차라리 이대로 샤워기가 머리 위로 툭 떨어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왜? 한태경이 여기에 있지? 잘못 들은 거라고 하고 싶어 뒤를 돌아 확인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진짜로 한태경이 있는 거라면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같은 알파니까 러트를 이해 못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정말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의 생각이 지나가고 있는데 이게 현실이라는 듯 샤워기가 꺼진다. 방금까지 쏟아붓던 물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침묵과 함께 남은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다시 한번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더 웃긴 것은 손에 쥐고 있던 성기는 여전히 흥분 중이라는 거다.
‘어….’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커다란 샤워 타올이 성기 말곤 온기 하나 없는 몸 위에 덮어졌다.
“제정신이야? 샤워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한태경이 한심한 목소리로 한숨 쉬며 이야기했다. 아니, 그게…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냥 푹 자고 싶었어. 그런데…. 제발 가주면 안 될까?
“쯧.”
한태경이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아직도 꿈쩍도 못 하는 이건의 등 뒤에 자신의 몸을 붙였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현재 서 있는 이건의 성기보다 더 뜨거운 그의 커다란 손이 이건의 손등 위에 겹쳐졌다.
“뭐, 뭐 하는?”
“뭘 그렇게 쥐고 있나 했더니.”
“야! 아니 대체 뭐 하는 거야??”
이건이 기겁해서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한태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이건의 손을 잡고 성기를 간접적으로 쓸면서 감칠맛을 더했다. 아주 조금 움찔하던 성기가 다시금 눈치 없이 꼿꼿하게 선다. 안 그래도 한 발 뺀 상태라 조금 더 예민해져 있던 몸이 갑자기 느껴지는 타인의 손길에 주체 없이 움찔거린다. 게다가 이미 들키면 안 되는 상대에서 들켜서 그런 것인지 점점 더 러트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인지 페로몬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는 그래도 샤워기 물소리로 어떻게든 중화되었는데 지금은 작은 공간에 주체할 수 없는 침묵, 그 속에 거친 숨소리와 질척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야, 이 손 놔. 제발.”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건은 억지로 한태경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힘은 어찌나 센지. 그렇다고 발차기나 발을 걸어서 그를 진심으로 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욕실에서 크게 다칠 수도 있어서… 이건은 빨리 끝나길 바라며 이를 악물었다.
“읏!!”
사정감이 느껴져 이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액이 흘러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자 한태경의 손이 떨어졌다. 두 번의 연속된 사정 때문인지 힘이 빠져 살짝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대고 머리를 박았다. 정말 이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올해 마가 낀 건가? 삼재인가? 아니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 사이에 수건은 바닥에 떨어진 건지 발밑에서 축축하게 젖어 있다. 한태경이 샤워기를 틀었다. 차갑게 흘러내리던 물이 아닌 이번에는 따뜻하고 적당한 온도의 물이 이건의 몸을 적셨다. 아니, 정확히는 상처를 피해 아래를 적시고 한태경은 자신의 손을 씻고 새 샤워수건을 가져와 이건의 몸에 덮었다.
“의사의 말은 들으라고 있는 거니 얼른 들어가서 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리곤 냉정하게 돌아서는 한태경을 보며 이건은 기가 막혔다. 아니 쓸데없는 짓이라니?! 지금 자위를 말하는 거지? 아니 그게 어떻게 쓸! 데 없는 짓이긴 하지. 이건은 심각하게 오는 현타에 한태경의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끔찍한 건 아직 아래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
사막 꿈을 꿨다. 넓디넓은 사막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뭘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앞으로 가자니 어디가 앞인지 모르겠고, 목표를 정하자니 무슨 목표를 정해야 할지 난감한 그 사막에 서서 멍하니 있다 문득 너무 뜨거운 햇볕이 야속해서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붉은색의 강렬한 태양 빛이 내리쬐고 있어 0.1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목이 바짝 타는 느낌이 들었다.
“으…….”
목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에 이건은 눈을 천천히 떴다. 사막? 사막이 아니라면 이렇게 몸이 뜨거울 리가 없었다.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멍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이곳은 한태경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무슨 꿈을 꾼 거지. 사막이었던 것 같은데… 악몽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 같은 느낌의 고요하게 기분 나쁜 꿈이었다. 이건은 마른세수하다 깜짝 놀랐다. 손에 흥건하게 묻은 땀, 그리고 몸이 말라 침이 제대로 삼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왜 이렇게 덥고 뜨겁나 했더니 몸에서 열이 나고 있었다. 완전히 러트? 라고 생각하기엔 몸이 간질간질한 것보다 욱신욱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이건, 몸살 기운이다. 분명 어제 찬물을 그렇게 맞고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도 전에 잠이 들어서 몸살이 온 것 같았다. 하, 망할 가지가지 하네. 이건은 한숨 쉬다가 마른 목 때문에 아파서 콜록 기침했다. 방 안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 물이 있나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다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이렇게 몸이 무거운 적이 있었던가.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 같은 몸 상태였다. 최악이다. 이건은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한태경이 출근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하아….”
간신히 몸을 움직여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주머니가 내부 냉장고에 넣으라고 물통을 몇 개 줬는데도 테이블 위에 놔두고 안 가져온 것이 생각났다. 챙겨 주셨는데 안 챙긴 자기 잘못이지. 이건은 한숨을 훅 쉬고 페로몬을 간신히 갈무리했다. 아주머니는 베타라고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문을 열고 나가니 조용했다. 그 가운데 키친에서 유리그릇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 어?”
아주머니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식탁 앞에는 한태경이 서 있었다.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는데.”
한태경이 기다렸다는 듯 투명한 물컵에 물을 따라 이건에게 내밀었다.
“회… 쿨럭.”
회사 안 갔느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목이 말라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은 어쩔 수 없이 한태경이 내민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
“회사, 회사… 출근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억나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재택 한다고 했는데.”
“아….”
맞다. 바퀴벌레들 때문에 재택 한다고 했지. 맙소사. 이걸 왜 까먹어. 아무래도 아프니까 뇌가 왜곡해서 돌았나 보네. 하. 어?
한숨을 쉬는 이건의 이마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시원한 열기가 잠시 잠깐 어지러운 머릿속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태경은 이건의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이 나는 것을 알곤 혀를 찼다.
“식사하세요. 그 옆에 약 먹으면 됩니다. 해열젭니다.”
정말 모든 것이 기다렸다는 듯 준비되어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이건은 자리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흰죽과 죽과 먹기 좋은 반찬이 몇 개 있었다. 맞은편 한태경의 밥은 멀쩡한 잡곡밥이었다. 물을 마셨지만, 목이 계속 마른 상태라 밥을 못 씹어 넘길 것 같았는데 잘 된 것 같아 이건은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한태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역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죽을 한 입 먹으니 흰죽인데도 정말 제대로 된 죽이었다.
“이거… 전무님께서 끓이신 건가요?”
“네. 별로입니까?”
“아뇨, 신기해서. 사실 죽이라는 게… 쉬워 보여도 요리하기 까다롭지 않습니까.”
가끔 아팠을 때… 죽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배달을 시켜 먹을까 하다가도 집에서 끓인 죽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혼자 죽을 만들어 보겠다고 끙끙거리다 결국 실패하길 여러 번….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리 잘하시네요.”
하긴 원래 잘했지.
“밥 다 먹고 상처 한번 보겠습니다. 어제 물을 맞은 터라 상처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아, 갑자기 체할뻔했다. 잊고 있던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서 이건은 그대로 밥상을 엎고 뛰쳐나갈 뻔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한태경은 유연하게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건가. 모른 척해주는 건가. 그러면 다행인데.
이건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죽을 다 먹고, 그가 준비해둔 약까지 먹은 후, 그릇들은 자기가 치우고 설거지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태경의 한숨으로 깨갱 꼬리를 내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곧 그가 구급함을 들고 와서 이건의 앞, 바닥에 앉아서 이건은 당황했다.
“전무님 여기 앉아도 됩니다.”
“배 쪽 상처는 이렇게 해야 잘 보입니다. 셔츠 올리세요.”
이건은 주춤주춤하며 조심스럽게 셔츠를 올렸다. 상처는 다행히 잘 아물어 있었지만, 진물도 보이는 것 같아 한태경은 한숨을 쉬며 소독 거즈를 붙이고 붕대를 감았다. 다행히 등의 상처도 이상 없어서 그쪽은 간단하게 소독만 하기로 했다. 한태경이 소독을 하는 동안 이건은 다시금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대체 왜 이러지. 아무리 몸에 열이 난다지만 이렇게까지 수분이 마를 수가 있나.
“목마릅니까.”
아니, 대체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 귀신같이 눈치채는 건가.
“네, 물을 좀 마시겠습니다.”
“그 전에 서이건 씨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