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서이건 선수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진짜요. 어릴 적부터 이름 엄청 들었다니까요. 오빠랑 이건 선수 경기 다 봤어요.”
“맞아. 그러면서 이건 선수 폼이며 특기인 발차기까지 저희에게 시범으로 보여주면서 항상 대단하지? 대단한 사람이지? 하고 말했었다고요.”
“항상 만나고 싶어 했어요. 같은 경기 한 번이라도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항상 어떻게 어긋나더라고요. 그때마다 오빠가 얼마나 실망하든지.”
“그거 위로하는 것도 일이었어.”
스쳐 지나가는 과거를 그리며 두 쌍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야기 듣고 나니 미안해지기도 하고, 쌍둥이들이 민망해하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너희 형에겐 내가 잘 이야기할게. 나 때문에 너희들 그만 괴롭히라고.”
“에이 아니에요. 형이 정말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요즘은 이건 선수랑 거의 붙어 있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
거의가 뭐야. 24시간 붙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요즘은 좀 덜해요. 저희랑 떨어져 지내기도 하고.”
“아, 그런데 오늘 일로 형이 다시 집에 들어온다고 하면 어쩌지?”
재우가 생각난 듯 이야기했고, 이건은 깜짝 놀랐다. 한태경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고? 물론 1학년이라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만약 한태경의 집에서 압박이라도 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NI그룹을 어떻게 이겨.
“음… 그럴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을 거야.”
“왜 다쳤는지 물어봐도 돼?”
이건이 조심스럽게 쌍둥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재우가 고개를 저었다.
“형은 이건 선수에게 이야기하는 거 원치 않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어…. 심각한 이야기야?”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서이건 선수라면 분명 걱정할 테니까요.”
한재우의 미소에 이건은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한태경이 이야기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서 포기하고 두 사람에게 한태경이 학교생활 어떻게 하는지 두런두런 이야기해 주면서 한태경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쩐지 밖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았다.
◆
태경과 함께 밖으로 나온 재경과 태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들을 걱정했다.
“태경아. 괜찮아.”
“그래, 괜찮단다.”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고 손을 쓰다듬으면서 두 사람은 어떻게든 크게 충격을 받은 아들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쉽게 그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저 때문이잖아요.”
“태경아. 너 때문이 아니야.”
“아니에요. 아버지, 이건 저 때문이에요. 재우가 납치당할 뻔하다니.”
태경이 괴로운 듯 입술을 떨며 이야기했다. 한태경에게 온 한 통의 전화… 그건 재우를 지키기 위해 붙여 놓은 사람에게 온 전화였다.
‘한재우 님이 납치당할 뻔하셨습니다.’
분명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태경에게 전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람을 붙여 놓았고, 연락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들이 자신이 찾아온 것에 그렇게 놀라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준비해 맞이한 것을 보니 분명 아버지들은 자신이 재우에게 사람을 붙여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재우가 납치당한 이유는 NI의 차남이라서가 아니다. 재산을 노린 것도 아니며 원한 관계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한태경’이었다.
한태경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안 좋은 것과 별개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여러 번 납치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우성 알파로 발현하고 정부가 기준을 정하는 발현 검사의 결과 때문에 정부 특별 감시자가 된 이후부터 한태경을 노리는 이가 많아졌다. 그전까지는 한태석과 박재경은 한태경을 외부에 노출 시키는 것을 꺼렸다. 어릴 적엔 사진을 간혹 올리긴 했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얼굴 노출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였고, 그때의 이유는 단순했다. NI의 유일한 후계자이다 보니 혹여나 위험할까 봐서. 그러나 정작 아이를 위험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고, 그 이유는 한태석과 박재경을 힘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당황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이가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절대 되돌릴 수 없음에 절망했다.
한태경은 갓 태어났을 때 거의 죽어서 태어난 것과 다름없었다. 한태석은 그런 아들을 살리고자 독일에 갔고, 독일에서 자신의 알파 페로몬 샘을 이식하면서 알파성을 아이에게 주었다. 그저 우성 알파의 회복력과 강인한 체력을 이어받아 아이가 살길 바란 이유 하나뿐이었다. 몇 번의 수술과 긴 치료 기간 끝에 다행히 태경은 살아났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년간 인큐베이터 안에서 같은 자세로 꼼짝없이 인형처럼 눈만 감고 있던 아이가 눈을 뜨고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한태석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박재경 역시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가 자신의 품에 무사히 안기며 웃으면서 아빠라고 불러줬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태경의 건강은 다시 급격히 나빠졌다.
원인은 간단하게 밝힐 수 있었다. 이식했던 한태석의 알파성과 한태경이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할 알파성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덕분에 아이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식한 알파성을 제거하려고 위험한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일체화가 되어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는 점차 아픔과 고통에 점차 시들어갔다. 그나마 건강해져서 웃기 시작했는데 그것마저 꿈처럼 사그라지고 있었다.
‘아빠. 너무 무서워요. 제가 괴물이 될 것 같아요. 괴물이 되기 싫어요.’
아이는 매일 그렇게 말하며 울었다. 재경은 그런 아이를 끌어 안아주며 울었다.
‘너는 절대 괴물이 되지 않아. 이렇게 예쁘고 착한데 어떻게 괴물이 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아빠가 지켜 줄게. 반드시 지켜 줄 거야. 아무도 우리 태경이 못 데려가. 아프게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제발 아가. 아빠 곁에 있어줘. 제발….’
아빠들은 힘들어했다. 매일 한태석은 술을 마셨고, 자는 태경에게 와서 끌어안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널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죽으마. 태경아. 신이시여 제발 우리 태경이를 살려 주시고 저를 죽여주세요. 제가 죄인입니다.’
괴로워하는 아버지들을 보며 태경은 겉으로 좋은 척을 하려고 했다. 괜찮은 척을 하려고 했으나 고통은 점점 커졌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괴물 역시 커져만 갔다. 아버지들이 함께 자신과 싸워주길 바랐으나 그게 더더욱 고통일 것 같아 혼자 이걸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홀로 그 싸움을 시작했을 때 만난 것이 서이건이었다.
그날 이후 서이건이 함께 싸워준다는 말을 믿으며 강해지려 노력했다. 괴물을 죽이려 노력을 많이 했고, 스스로 일어나고자 많은 싸움을 해야 했다. 자라면 자랄수록 서이건은 자신과 싸워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그때의 약속 하나, 그것이 생명줄인 양 잡으며 자신의 병을 물리치려 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는 태경에게 말했다.
‘물리치려 하지 마. 네가 평생 가져가야 할 동반자라고 생각해. 태경아. 인정하고 받아들여. 밀어내선 안 돼. 그러면 네가 더 아플 거야.’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 괴물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완전히 동화가 되어 한 몸이 된다면 조금은 편해질까.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걸까. 태경은 오직 그 희망 하나를 가지며 10살이 될 무렵부터 자신의 알파성과 외부의 알파성을 동시에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많은 정신적인 힘과 육체적인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혼자 괴로워 발버둥 칠 때마다 서이건의 영상을 보았다. 점점 강해지는 서이건을 보면서 자신도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함께 싸울 수 있을 테니까. 가능성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작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견뎠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완전히 두 알파성을 융합시켰다. 덕분에 몸이 안정을 찾게 되었고, 고통도 아픔도 완전히 사라졌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괜찮을 거라고, 아버지들도 동생들도 자신을 보며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희망이었다.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태경 학생은 다른 우성 알파들보다 페로몬이 강합니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변형 유전자도 보입니다. 이 유전자가 앞으로 한태경 학생과 그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릅니다.’
돌연변이 알파. 전 세계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자신에게 붙여진 수식어였다.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태경을 우성 알파라 이야기했지만, 이미 정부에 고위 관직자들은 알고 있었다. 한태경은 돌연변이라는 것을.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이지만 그가 가진 알파성은 워낙 특이하고 월등해서 앞으로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태경은 특별 관리 대상에 들어갔다. 전 세계에 동일하게. 유일하게 알파성 이식이 성공한-그것도 우성 알파-그리고 그로 인해 돌연변이가 된 알파.
당연히 그 소식에 아버지들은 또다시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그런 두 분을 위해 태경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