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어떻게 할 거야?”
한태경의 질문에 이건은 눈을 깜박였다.
“1학년은 무조건 기숙사 생활이잖아.”
“아, 맞다. 잊어버리고 있었네.”
국체대는 입학하고 1년은 무조건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건 교칙 중 하나라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기숙사 들어가야지. 너도 그렇지?”
“그래야지.”
“들어보니 2인 1실이라고 하던데 같은 방이면 웃기겠다.”
“그런가?”
“그렇지. 아, 이참에 물어보는데 너도 옛날부터 내 이야기 많이 들었어?”
“라이벌… 뭐 이런 걸로?”
“응.”
이건은 정말 예전부터 너무너무 궁금했던 것을 이참에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들었지. 지겨울 정도로.”
“아, 역시.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어. 한태경 너랑 한번 대련해 본 적도 없는데 희대의 라이벌이고 어쩌고저쩌고…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나도 그래. 첫 경기 이기자마자 네 이름부터 들리던걸?”
“와, 나도!”
이건은 이제야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기쁨에 그간의 서러움과 있었던 이야기를 다 쏟아냈다. 한태경도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서 둘 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들을 라이벌이라 명명했던 최초의 인간이 과연 누구인진 몰라도 나중에 만나면 발차기를 해주자며 약속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고마워.”
한태경은 빈 잔을 흔들면서 이야기했다.
“어째서?”
“덕분에 서이건이라는 선수를 알게 되었으니까.”
얜 가끔 이렇게 민망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
“크흠, 그… 렇게 말해주니 내가 영광이네. 한태경의 라이벌이라니. 그런데 이쯤 되면 라이벌이라는 말이 민망하지 않아? 우리 라이벌 말고 친구 하지 않을래?”
민망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시커먼 고3 남자들이라니. 하지만 둘 사이에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이건은 용기를 내봤다.
“음….”
한태경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싫은데.”
의외의 대답에 이건이 들고 있던 닭 날개를 떨어트릴 뻔했다. 너무 단호하고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어, 그래? 네가 친구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데….”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까. 모르겠다. 대체 친구가 아니면 왜 치킨이랑 피자까지 사 들고 여길 다시 온 건데? 자신이 오메가라면 뭔가 꿍꿍이가 있나 싶겠지만 알파니 그것도 아니고….
“난 라이벌이 더 좋은 것 같아.”
“왜?”
“그게 더 끈끈하게 엮인 것 같아서. 친구는 절교할 수 있지만 라이벌은… 싸워도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잖아?”
그게 그렇게 된단 말이야? 이건은 생각지도 못한 한태경의 라이벌론과 친구론을 엮어 만든 계산법에 감탄했다. 친구보다 라이벌이 더 끈끈하게 느껴진다니. 솔직히 전적으로 공감할 순 없지만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한마디로 계속 이렇게 지낼 거라는 거지?”
“그래.”
역시나 빠른 대답이다.
“그럼 뭐, 됐어. 나야말로 친구든 라이벌이든 상관없어.”
“그럴 것 같았어.”
이건은 닭 날개를 뜯으며 한태경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짜 잘생긴 놈이다. 그만큼 성격도 좋고. 가끔 이 녀석 부모님들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정말 아들 한번 바르게 잘 키우셨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고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피자와 치킨을 다 먹었다. 먹은 것을 정리하고 태경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을 때, 이건은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