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훨씬 괜찮네.”“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건이 침대 앞에 짐 가방을 놔두며 이야기하자 한태경이 문을 닫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태경에겐 좁지 않을까? 그래도 국내 최고 대기업의 장남인데, 그 집 자체도 엄청 클 거고 안에서 누리던 것이 보통이 아닐 텐데 이런 원룸은 비좁게 느껴지지 않을까.
“왜?”
이건의 시선에 한태경이 물었다.
“너는 그래도 거부할 수 있지 않아? 굳이 이런 곳에 살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음,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나 이 학교에 들어오면서 단 하나도 혜택받은 거 없어.”
“아, 너야말로 오해하지 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다만 불편하지 않냐는 거지.”
“왜 불편해.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난 이제 입학한 신입이니 따라야지. 게다가 10%만 마음에 들지만 뭐, 좋은 룸메도 생긴 것 같고.”
태경이 능청스럽게 이건의 아래위를 훑으며 말했다. 이건이 침대 위에 있던 베개를 그에게 집어 던졌고 태경은 그것을 여유롭게 받고 하하 웃었다.
“짐 정리 도와줄까?”
“그래, 헛소리 말고 10% 룸메 좀 도와라.”
이건이 침대 앞에 털썩 앉았다. 서랍형 침대라 아래에 옷을 정리해서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작은 옷장이 있어 재킷 등은 그곳에 걸으면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시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작은데도 올망졸망 있을 건 다 있다.
“집은 어떻게 했어?”
태경이 옷을 옷걸이에 걸어 주며 물었다.
“그냥 청소 싹 하고 잘 정돈 해두고 왔지.”
“여기에 1년만 있을 거야?”
“그래야지.”
그래도 아직은 그 집이 좋고, 그 집을 그리워할 것 같다. 비록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깝긴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지. 가능하면 돈 열심히 벌어서 그 집을 전세로 바꾸고 싶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집주인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원하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도 해주셨고,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는다면 언제고 가능하겠지.
“그러면 잘 부탁한다. 룸메.”
간단하게 정리하고 일어나서 태경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태경도 웃으며 그 주먹을 자신의 주먹으로 툭 친다.
“그래. 잘 부탁해.”
“코 골지 말고.”
“안 골아. 알고 있잖아?”
“하루 자 본 걸로 어떻게 알아.”
“난 알겠던데. 넌 업어 가도 모를 스타일이야.”
“나 업어 봤어?”
“업진 않았지만.”
“업진 않았지만?”
태경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역시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요즘 따라 저런 의미심장한 얼굴을 많이 한단 말이야. 기분 나쁘게.
“걱정 마. 이상한 짓 안 했으니까.”
“뭔 소리야. 아, 여기 식당 어디야? 나 진짜 학식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
“기숙사생들은 지하 식당에서 무료로 먹을 수 있고, 유료 식당은 본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 가볼래?”
“당연히 지하지.”
“그래.”
태경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이건은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생판 모르는 사람이 룸메였다면 이렇게 편안하게 웃으며 식당에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불편하게 내외하며 혼자 밥 먹는다고 쓸쓸히 나왔을지도. 뭔가 어쩐지 처음부터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다. 그렇게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
“자! 마셔라!!”
새 학기 첫날. 선배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말을 건넨 그 날, 선배들은 1학년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오후 7시부터 술집에 데려왔다.
그리고 치킨 및 피자, 각종 마른안주를 다 시키고 맥주 한 궤짝에 소주 한 궤짝을 시켜서 테이블 옆에 쌓아두고 자리에 1열로 앉은 신입들에게 빈 맥주잔을 내밀더니 일제히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한가득 따라 주었다. 코에 퍼지는 알싸한 알코올의 향기에 이건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술은 정말 하늘에 맹세코 입에 대본 적이 없었다. 마시고 싶은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혹여나 걸려서 선수 생활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돼서 꾹꾹 참았다. 덕분에 자신의 간이 술에 특화된 간인지, 아니면 약하디약한 간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알코올이 덜컥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