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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저녁을 먹고, 의사 선생님께서 오늘 하루는 샤워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셔서 간단하게 씻고 상처에 약을 바른 후 침대에 누웠다.
“어?”
낯선 공간의 낯선 침대. 그런데 침대에 눕자마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왜지? 침대가 익숙할 리가 없었다. 집에서도 바닥에서 자고, 체육관에서도 바닥에서 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언젠가 누워본 적 있는 것 같지? 스스로도 의문이라 눈을 깜박깜박하며 두어 번 침대에 몸을 이리저리 굴려 보며 최근에 침대에서 잔 적이 있던가 생각하다 문득 얼마 전 한태경의 본가에서 경호하다 잠깐 잠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래, 맞아. 그 침대랑 비슷해. 매트리스의 느낌이랑 이불이랑 전부. 이건은 벌떡 일어나 방의 구조를 찬찬히 둘러 보았다. 혹시나 해 둘러본 방의 구조는 깔끔하지만, 그때 그 방과 똑같진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한태경이 기억할 리가 없지. 아니, 애초에 한태경이 기억하든 말든 자신을 위해 또 방을 개조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착각 아닌가. 이건은 자신을 한심해 하며 눈을 감았다. 오늘의 몸 상태는 괜찮았다. 병원에선 해가 질 때부터 슬슬 반응이 왔는데 지금은 아니다. 너무 평온하고 괜찮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눈꺼풀이 무거운 것 보니 오늘 잠도 잘 잘 것 같았다. 이건은 잠의 유혹을 거절하지 않고 천천히 깊은 어둠으로 들어갔다.
“으….”
몸이 무겁다. 아래로 점점 열이 쏠리는 느낌에 이건은 눈을 번쩍 떴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불을 들춰보니 아주 약간 발기한 성기가 보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잠든 지 두 시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소용이 없어서 한태경을 생각했다.
‘옆방에 한태경 있다. 한태경 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 집에서 발기하는 건 아니지. 그건 양심이 없는 거지. 그러나 성기는 양심이 없었다. 점점 더 흥분하며 아래가 간질거리자 이건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샤워하자. 의사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하자. 찬물에 샤워하다 보면 몸 온도가 훅 떨어지니 흥분이 가라앉을지도 몰라. 이건 운동할 때도 몇 번 했던 일이잖아. 문제는 샤워실을 가려면 방을 나가야 한다는 거지만.
이건은 침을 꼴깍 삼키며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아까 9시쯤 퇴근하셨고, 지금 이 집에는 한태경과 자신만 있다. 그도 아까 잔다고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봤으니 지금쯤 자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문 앞에서 살짝 귀를 대보았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를 비롯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디 푹 잠들었기를 바랐다. 욕실로 들어가서 자위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양심이 찔렸다. 이건은 조심스럽게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후 옷을 벗고 발기한 성기를 보며 한숨 쉬며 샤워기를 틀었다. 차갑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이건은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러트가 오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닌데… 만약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집에서 편안하게 자위를 했을 것이다.
“그 바퀴벌레들은 진짜 인생에 도움이 안 되네.”
이렇게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싶었다.
“그나저나.”
쏟아지는 찬물을 그대로 맞아 손가락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기는 죽을 줄을 몰랐다. 이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 바로 억제제를 달라고 해야겠어. 그 전에 이걸 어떻게든 풀어야… 그래, 차라리 빨리 풀자. 그게 더 낫겠어. 이건은 힐끔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을 텐데도 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물의 수압을 높여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더 강하게 나도록 하고, 손으로 조심스럽게 성기를 잡았다. 기다렸다는 듯 성기가 더 발딱 섰다.
“읏.”
성기를 손가락으로 한번 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길과 흥분이라 숨이 거칠어지고 식었던 몸이 다시 후끈 열기가 오른다.
“자위하는 법 안 까먹었으려나.”
자신이 말해놓고선 이건은 어이없어서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이건은 자신이 생각해도 성에 엄청 담백했다.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 강하진 않았다. 진 사범님은 모처럼 잘나게 널 낳아 주신 부모님들이 울겠다고 이야기하셨지만 서이건은 정말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소개를 안 받은 것은 아니다. 소개팅도 했고, 대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자신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시간도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귀다 보면 정도 들 거라고, 몸을 부딪치다 보면 마음도 갈 거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지만 그건 상대방에게 못 할 짓이라 생각했기에 원천 차단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하늘에서 아버지들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고 자신의 반려가 나타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었다. 세상에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사랑만큼은 제일 크게 주고 싶은 사람이 언젠간 나타나리라 생각하며 차라리 동정 마법사가 되길 선택했고, 후회는 없었다.
“아….”
신음을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잇새로 새어 나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쓱쓱 아래위로 손을 움직이며 조금씩 몸의 열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벽에 손을 짚고 한 손으로 더 크고 빠르게 문질렀다.
“아!”
짧은 탄성 같은 신음과 함께 성기의 열기가 일부 빠져나와 손에 후두두 떨어졌다. 찬물과는 다르게 불투명한 그 액체만큼은 따뜻했지만,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왜 남의 집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쏟아 내리는 샤워기의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의미 없는 액체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성기를 보곤 이건은 곤란했다. 아직 성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단단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으로 몸과 욕망이 합의 볼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합의 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러면 괴로워지는 건 몸의 주인이었다. 한 번 더 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만, 과연 그 한 번으로 가라앉을까? 페로몬이 새어나가진 않겠지. 지금도 자위하면서 혹시나 페로몬이 새어나갈까 조심했는데….
이건은 얼른 만져 달라고 벌떡 서 있는 성기를 보며 손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오늘 이 찬물에서 해방이 되려면 급한 불을 꺼야 했다.
“하아….”
다시 손으로 슥슥 문지르자 원치 않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자기 신음 같은 건 안 듣고 싶은데.
- 똑똑.
노크 소리에 깜짝 놀라 이건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아까보다 더 차갑게 식어 버리는 몸을 느끼며 이건은 문 쪽을 바라보았다.
- 똑똑.
역시나 노크 소리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누구지? 아니,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릴 사람은 한태경 아니면 귀신이다. 그런데 귀신이 노크할 리가 없잖아. 한태경은… 아니어야 한다. 화장실에 올 리가 없어. 그의 방에 욕실이 별도로 있다고 들었다고.
“누, 누구십니까.”
- 서이건.
쿵- 하고 심장이 놀라 벌떡 뛰는 소리가 들렸다. 반면에 몸은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내심 차라리 귀신이길 바랐다. 그런데 왜….
- 문 열어.
“아, 나 지금 샤워, 샤워 중이야.”
쾅! 하고 문을 치는 소리에 아까보다 더 놀랐다. 정말 그대로 심장이 쩌적 하고 갈라지는 것 같았다.
- 문 열어.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혹시 페로몬이 새어나갔나? 페로몬으로 자위한 걸 알 수 있나. 설마 자기 집에서 자위했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뭐라고 하지. 일단 이불은 나중에 차고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러트 맞잖아! 억제제를 줬어야지!’ 하고 적반하장으로 굴어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 이 녀석은 왜 전혀 식질 않는 거야. 아니 식기는커녕 더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가 이건은 러트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며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일단 저 녀석부터 보내자.
“샤워 중이야! 끝내고 나갈게.”
답이 없다. 아니, 기척이 없다. 간 건가? 제발 간 거여라.
이건은 몇 초 정도 더 기척이 나기를 기다린 후 아무런 느낌이 없자 얼른 손을 움직였다.
“제발 빨리 끝내자. 제발.”
숨을 몰아쉬며 한 손으로 벽을 대고 고개를 숙인 채 오른손으로 성기를 흔들었다. 제발- 빨리, 빨리.
“젠장.”
그런데 어째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한태경이 생각이 나는 거지. 밖에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아까 그 목소리를 들어서? 무엇이든 간에 썩 유쾌하진 않았다. 눈을 감을 때마다 한태경의 얼굴이, 붉은 눈과 큰 손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아니야. 아니라고.”
차라리 예쁜 오메가를 생각해.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네 욕구와 욕망에 그 누구도 끌어들일 필요 없어. 서이건. 그냥 빨리 싸자.
문을 등진 상태로 이건은 어떻게든 사정하려 애를 썼다.
“서이건.”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