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페로몬과 무슨 상관이지.”이 이상 진 사범에게 물어봐야 들을 수 있는 얘긴 없겠다고 생각하며 이건은 남은 김밥을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다시금 오늘 일이 떠올라 못내 궁금해진 이건은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한태경….’
기사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하긴 당연한가. 태권도 주니어 국가대표에, 우성 알파에 외모도 되고 무엇보다 NI그룹의 장남이니까.
‘한태경 유년 시절’
‘한태경 어릴 적’
‘한태경 유치원’
‘한태경 병원’
‘한태경 페로몬.’
몇 가지 검색어를 조합해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특별히 나오는 것은 없었다. 하다못해 NI그룹 가족사에 대해서 적혀 있는 칼럼이나 블로그 글에서도 한태경이 병치레를 하거나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몸이 약했다는 얘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그의 가족사진만 실컷 보았다.
“와 진짜 아버지들을 5:5 비율로 섞어놨네.”
얼굴은 완전히 알파 아버지 그대로인데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피부색 등은 낳아준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것 같았다. 게다가 좋은 점만 쏙 빼닮았는지 외모는 그 가족 중에서 한태경이 제일 나아 보였다.
“흐음….”
그렇게 손가락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배회하다 지쳐 서이건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게 뭐 하는 거지.”
누구에게 묻는 건지 모르겠다. 자문자답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냥 아주 조금, 조금 신경 쓰일 뿐이었다. 이게 다 뭐람. 이게 다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한태경 때문이었다.
◆
“사범님, 왜 이렇게 안 와요.”
2차 테스트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고 당일 아침에 접수 신청을 해야 했다. 선착순으로 번호를 배정받기 때문에 일찍 번호를 받아 빨리 끝내고 내일 있을 토너먼트 전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전 8시부터 학교 앞에서 기다렸는데 진 사범이 오질 않아 전화를 걸었다.
[아, 이건아 미안하다. 오늘 너 혼자 할 수 있겠어?]
“왜요? 혹시 어디 아파요?”
[배탈이 난 것 같아.]
“또 위염 도졌네.”
[아니다. 그냥 배가 아픈 거야.]
“신경성 위염이에요. 사범님 언제나 내 경기 앞두고 항상 배탈 났잖아요.”
진 사범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진실이었으니까.
“오늘은 별거 없으니까. 저 혼자 하고 갈게요.”
[미안하다. 이건아.]
“그런 말 할 시간에 얼른 병원이나 가세요.”
[알았다. 끝나고 전화하고]
“네.”
전화를 끊고 이건은 커다란 국체대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혼자라 그런가? 더 거대해 보이네. 하지만 합격하면 혼자서 수천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들어가자. 이건은 허리를 펴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2차 테스트는 작년과 같이 기본기 테스트였다. 그리고 그 기본기는 진 사범이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기에 이건은 몸풀기도 되지 않을 만큼 간단하고 싱겁게 합격 판정을 받았다. 진 사범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대기실을 나오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일찍 움직인 만큼 시간도 남고 흥미도 있는 김에 슬쩍 보러 가니 한태경이 기본기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와, 진짜 잘생겼다.”
“실물이 훨씬 낫다.”
“저 녀석은 합격하겠지? 내년에 재미있겠네. 태권도”
“그냥 연예인이나 하지 왜 태권도를 했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지만 주어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한태경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건 서이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으로 보이는 한태경의 움직임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완벽한 기본기 그 자체였다. 절도 있고, 단호했으며 깔끔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이 부러울 정도였다. 아마 진 사범이 같이 있었다면 그는 한태경을 보고 배우라고 서이건에게 잔소리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