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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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퇴원하고 싶습니다.”

“뭐?”

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현재 진행 사항이 어떤지 이건에게 설명하러 온 김 사범은 갑작스러운 이건의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달력을 보았다.

“너 퇴원하려면 아직 사흘은 더 있어야 한다.”

사실 그보다 좀 더 빨리 퇴원할 수 있었지만, 좀처럼 상처가 아물지 않아 좀 더 있게 되었다.

“상처도 아직 다 아물지 않았고.”

“이 정도는 집에서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사실 허리도 아프고… 오히려 병원에 오래 있으니 몸이 망가지는 기분입니다.”

그렇겠지. 활동량이 많은 사람이 병원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움직인다고 해도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으니 답답함을 느끼는 것을 당연했다. 김 사범도 그걸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기에 퇴원해도 괜찮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한태경에게 연락했다.

[퇴원?]

역시나 한태경의 목소리는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어.”

김 사범은 뻘뻘 거리며 열심히 한태경에게 서이건이 퇴원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서이건은 김 사범에게 살짝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퇴원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트가 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건지 며칠째 몽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몽정만 하면 다행이다. 가끔 아랫배가 당긴다는 느낌을 받거나 몸이 간지럽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성기가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서서 미칠 것 같았다. 병원에서 그런 짓을 할 수도 없고, 아침마다 그런 이유로 환자복 갈아입는 것도 정말 민망하고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진심 오늘 아침에는 발정 난 개새끼가 된 것 같아서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졌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하루가 멀다고 증상(?)이 계속 나타나니 이건은 더는 병원에 있기가 힘들어졌다. 어차피 지금 몸 상태도 나쁘지 않고, 상처도 걱정과 달리 잘 아물고 있고, 실밥도 오늘 뽑기로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김 사범님께 퇴원 이야기를 했다. 그것 역시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김 사범님이라면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건아, 태경이가 통화하고 싶다는데.”

“아, 네.”

이건은 내밀어진 휴대폰을 한번 보고 침을 꼴딱 삼켰다. 아무래도 정정당당(?)하게 퇴원하는 게 아니다 보니 조금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다. 공개 망신은 피해야지.

“전화 바꿨습니다.”

[퇴원하고 싶습니까?]

“네.”

[병원이 많이 불편합니까?]

“네?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의료진 모든 분들이 잘 해주십니다. 그래서 저도 상처도 많이 아물었습니다. 다만….”

어, 진짜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예전 한태경 같았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 발정 났나 봐!!’ 하고 장난으로라도 쳐보겠는데, 지금 한태경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말을 잘해야 했다.

“아, 아무래도 그 아프다 보니 부모님 생각나고… 집이 그립고, 어… 그러니까 향수병!! 향수병도 생기고 해서… 병원에서 잠도 잘 못 자고 그렇습니다. 제가 퇴원하고 나서도 병원 잘 다니고 할 테니 퇴원 허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향수병?]

그래,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정말 웃긴 이야기지.

[…알겠습니다. 퇴원 수속 밟도록 하죠.]

헉, 통한 건가? 그런 건가? 이건은 정말 박수를 치고 싶었다.

[단, 퇴원하면 원래 서이건 씨가 살고 있던 집이 아니라 저의 집으로 와야 합니다.]

“네? 아니 왜….”

갑자기? 이건 무슨 말이야.

[아직 상황 정리가 다 되지 않았습니다. 돌아다니기엔 이릅니다.]

한태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까 김 사범님이 와서도 그 말을 했다. 아직 100% 정리된 것은 아니라고. 그때 당시 한태경에 공격했던 바퀴벌레들은 거의 대부분 죽였거나, 자결을 했다. 절대 위치를 알리거나 그들의 우두머리를 발설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다행히 그들이 남긴 족적이 있어 그것을 따라가 무역회사 하나를 발견하여 쳐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 다리 하나였을 뿐, 그들의 본거지는 따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당분간 한태경이 보안이 사무실보단 낫고,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만약의 기습에 대비해 인명피해가 최대한 작은-자신의 집에서 지금 칩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서이건도 한태경의 곁에 있는 것이 나았다. 비록 지금 몸 상태로는 그를 지켜줄 순 없을지언정 방패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이거 산 넘어 산 아닌가? 뭐 피하려다가 뭐 밟은 격이 되는 건 아닐까. 함께 있는 이놈의 눈치 없는 성기가 발딱발딱 서기라도 한다면 정말 평생 이불 발차기 감인데…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곳 빌라에 상주하는 경호원들을 위해서 아래층 원룸 하나씩을 내주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자신에게도 방을 하나 배정해주지 않을까? 한태경의 집이 아니면 그래도 나을 것이다. 이건은 거기까지 얼른 계산을 끝냈다.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