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나 약속 있는데.”
“약속?”
“약속?”
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놀라서 쳐다봤다. 선배도 노트북으로 타자 치다가 움찔하며 이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아 목요일인데 나도 모르게 약속을 잡아 버렸네. 아앗! 이럴 수가! 시간도 이미 지났고!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선배님 다음 주에 봬요! 한태경 나중에 보자!”
자기가 생각해도 어설픈 발 연기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잘 속아 주길 바라며 이건은 얼른 카페를 나와 큰길가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쯤 뛰는 것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막상 나와보니 갈 데가 없다. 그렇다고 기숙사로 다시 돌아가기엔 좀 아깝고, 이건은 고민하다가 역 근처에 생겼다는 큰 쇼핑센터를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 영화관도 생겼다니까 간 김에 영화도 볼까.
“어? 이건 형!”
“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아보니 카페 아르바이트할 때 함께 아르바이트했던 녀석이었다.
“어? 연우야.”
“와! 진짜 형이네!!”
대학교 들어오고 나서 알바는 당연히 꿈도 못 꾸고 카페에 인사하러 갈 시간도 없어서 그대로 연락도 흐지부지되었는데 이렇게 연우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특히 그 사건 이후 연우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듣기도 했기 때문에 밝은 얼굴로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안심되었다.
“형!!!”
연우가 달려와 이건을 꽉 끌어안았다.
“진짜 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아 여기 근처에 뭐 볼 게 있어서 왔다가 돌아가려는 길에 형 본 거예요.”
“그랬구나.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형은요? 와 근데 형 키 더 큰 것 같아요. 역시 체육인인가. 몸도 더 좋아진 것 같고. 와.”
연우가 아래위로 훑어보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연우의 말대로 체육인이다 보니 몸이 좋아졌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렸으니까.
“시간 돼요? 저 형이랑 밥 먹고 싶어요.”
“나야 시간 되지.”
“다행이다. 여기 맛있는 곳 알아요. 햄버그스테이크 집인데 진짜 맛있어요.”
“그래. 가자.”
연우가 이건의 팔짱을 끼고 진짜 기쁜 듯 웃으면서 걸어갔다. 이건도 왠지 그런 연우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크게 새로 생긴 쇼핑센터 뒤편으로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그중 햄버그스테이크 집에 들어가 자리 잡았다.
“럭키, 여기 늘 줄 서야 했는데 오늘은 사람이 없네요.”
“다행이다. 안 그러면 더워서 죽었을 거야.”
“하하 그건 그래요. 갑자기 상당히 더워졌죠.”
“그래, 너 아직 고등학생이지?”
“네, 아직 고3인데요. 대학교 결정돼서 지금은 열심히 알바 중이에요. 학비 벌어야 해서.”
“대학교가 벌써 결정돼?”
“요즘은 수능보단 내신 성적이랑 적성으로 대학교가 결정되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미술에 적성 점수가 높아서 한 달 전에 결정됐어요.”
“아, 그렇구나. 축하한다. 이거 내가 사야겠는데?”
“아니에요. 저 진짜 형에게 밥 한번 사고 싶었어요. 그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해서. 늘 신경이 쓰였거든요.”
연우가 이야기하는 그때가 언제인지는 이건도 잘 알고 있었다.
“인사하지 않아도 돼. 그건 당연한 거야.”
“형처럼 말하는 사람 잘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때 진호 형이 날 도와줬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 진호 형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진호 형이 은근히 도와줬으면 뭔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기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