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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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빙의는 중1 때 즐겨보던 정통 판타지 소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빙의는 고1 때 한창 유행하던 던전 판타지 게임이었다.

그 후 8년이 지나 25살인 지금, 희대의 명작 판타지 소설 <파국의 이니시아>에 빙의하며 어느덧 세 번째 빙의를 이뤘다.

의도치 않게 빙의 짬밥이 나날이 늘어가니 무언가 혜택이라든가, 알게 되는 묘수가 많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x발.”

혜택은 개뿔, 그렇게 개고생해서 결말을 보아도 빙의에서 깨고 나면 내게 떨어지는 콩고물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주인공들에게 존나 부려먹힌 후, 이용 가치가 다하면 버려지는 마법 램프와 같은 불쌍한 처지인 셈이었다.

알라딘이 이렇게 슬픈 동화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쨌든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비현실적인 판타지 꿈을 꾼다는 건 확실히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내가 무슨 램프의 요정도 아니고! ……얼추 맞긴 하지.

아무튼 대체 왜! 매번! 주인공들이 바라는 걸 들어줘야 하냐고!

“x발? 그게 무슨 말이지?”

“x같단 뜻이야.”

“네 수준에 맞는 상스러운 욕이군.”

내 옆에서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이 남자의 진짜 이름은 ‘하일 데르지오’로, 내가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환장의 연속이었던 빙의 첫날, 꿈이라며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당장 인정하라며 멱살을 잡는 살벌한 현실에 떠밀려 결국 빙의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 후, 백이강의 무시무시한 권력 남용의 덕을 본 나는 황태자의 전담 책사라는 임시 직위를 얻으며 황궁에 덜컥 눌러앉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어제 하루 동안 일어났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사형수에서 황실의 책사로 신분 상승을 한 소감은…….

“……나 책사라며?”

……별로였다. 그것도 아주아주.

“그렇지.”

넌지시 던져진 내 물음에 담담한 낯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백이강의 얼굴은 짜증 날 만큼 편안했다.

이윽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위화감이 위험한 신호를 보냈다.

왠지 또 백이강에게 속은 것 같다는, 그런…….

어젯밤, 백이강은 내게 자신의 책사가 될 것을 제안해 왔다.

책사란 꾀를 써서 타인을 돕는 사람이었다.

보좌관, 서기관, 재상 등의 하고많은 멀쩡한 직위 중에 책사를 준다는 그의 말에 의아해진 내가 이유를 묻자 백이강은 이렇게 답했다.

‘책사는 입만 움직이면 되니 네게 가장 적절하지.’

‘다른 직위도 입은 움직일 수 있는데…… 꼭 그거 해야 해? 난 그냥 네 곁에만 있으면 되는데.’

표현이 조금 노골적이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백이강의 가까이에 있어야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른 세계는 어떨지 모르나, 안타깝게도 <파국의 이니시아> 속 책사는 하는 일이 미미한 일개 조연인지라 진심의 감사 인사를 받기에는 썩 용이한 자리가 아니었다.

‘……너, 그런 말을 잘도.’

‘안 돼?’

내 원활한 빙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백이강의 곁에 있어야만 했다.

조금 더 간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백이강은 어쩐지 고개를 돌린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하지.’

나지막이 들려오는 승낙의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졌다.

책사인 내가 극악의 확률로 인사를 받는다 한들, 그게 상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감사 인사일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런 현실을 고려하면 책사는 빠르게 감사 인사를 받고 빙의에서 깨어나고 싶은 나로서는 마냥 환영하기가 어려운 직위였다.

물론 앞서 체결한 계약서에 따르면 내겐 그를 황제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으니 어찌 보면 적절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임시라지만, 적어도 보좌관 정도는 되어야 온종일 옆에 붙어서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을 텐데…….

অধিকাৰীয়ে এনেধৰণৰ অন্ত ঘৃণা কৰে!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