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은 나를 보자마자 이제 괜찮은 거냐며 백이강이 내게 하던 것처럼 나를 위아래로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월하게 스킨십을 했으나….
[SYSTEM: ‘청도운’ 플레이어님에 대한 ‘이안 데르지오’의 감사 확률은 현재 36%입니다.
※본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수치를 반영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갱신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안 변하네?’
예상과 달리 이안의 감사 확률은 변동이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때와 여전히 수치가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잡아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나란히 붙어 앉아도 숫자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럼 스킨십이 감사 확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데.
아니, 그럼 백이강은 어째서 확률이 올라간 거지? 그냥 예외인 건가?
사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백이강을 보통의 기준에 꿰맞춰 생각하긴 어려우니 말이다.
결국 생각과 달리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시간이 흥청망청 흘러, 마침내 약혼식 전날이 되었다.
다른 날과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평탄한 아침이었다.
백이강은 늘 그렇듯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집무실로 향했고, 아셀과 안나가 뒤늦게 일어난 내 시중을 들고 있었다.
“흠, 생각보다 황제가 조용하네. 독살 사건 때문에 한 소리 할 줄 알았는데.”
“필립 님께서 폐하께 보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하자 아셀이 간단히 이유를 알려주었다. 필립의 입담이 좋다는 건 워낙 잘 알고 있던 사실이라 왠지 납득이 갔다.
뭘 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황녀의 독살 시도 사건은 조용하게 잘 마무리된 듯했다.
“그럼 아르테 쪽은? 황녀가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만큼 순순히 물러나진 않았을 텐데.”
“그쪽은 황녀께서 잘 달래셨다고 들었답니다.”
이번에는 안나가 답을 주었다. 그런데 그러기 무섭게 창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르테의 대신들입니다. 오늘이 약혼식 전날이다 보니 바쁜 모양입니다.”
아셀의 말에 슬쩍 창밖을 넘겨다보자 같은 복장을 차려입은 대신들이 저들끼리 모여서는 숙덕이며 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파티 전보다 얼굴들이 해쓱하게 질려 있는 걸 보니, 황녀가 달랜 게 아니라 협박한 것 같은데.
하긴, 아르테의 현 황제나 다름없는 황태자가 델시아의 편인 이상, 대신들도 그녀의 말을 허투루 듣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래. 모든 게 잘 해결된 지금…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곤란하기 짝이 없는 최고의 난제가.
“어머!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신다고요?”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웅얼대듯 말한 걸 용케 들었는지, 안나가 손뼉을 치며 화사하게 웃었다.
아셀 또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으응… 그다지 궁금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내가 입을 옷이니 입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보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라타가 사이즈를 잘못 측정했다면 내일 약혼식에 들어서기도 전에 드레스가 북북 찢어질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말하면, 전에 의상실에서 툭하면 ‘가슴이 타이트’, ‘가슴이’, ‘가슴’ 하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번에도 내 불쌍한 흉부가 옷에 꽉 끼어서 숨을 못 쉴까 봐 미리 확인하러 가는 거다.
어디까지나 내 안전을 위해서다. 내 안전을 위해서.
“좋은 생각이세요! 웨딩드레스 피팅은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죠. 성심껏 돕겠습니다!”
“저기, 안나. 미안한데… 이번 일은 아셀에게 맡기려고.”
“네……?”
설레는 눈을 빛내며 결의를 다지던 안나는 더없이 허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입까지 떡하니 벌려서는, 완전히 충격받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