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야!!”
온통 황금빛으로 뒤덮인 고급스러운 응접실의 문이 과격하게 닫혔다. 그 사이로 누군가의 짤막한 고함이 매섭게 새어 나왔지만 이강은 못 들은 척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전하, 황녀께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셀이 굳게 닫힌 응접실 문을 흘긋 바라보며 입을 열자 이강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떼었다.
“개소리를 듣는 재능이 없어서 아쉽군.”
당연하다는 듯이 황녀를 개로 지칭하는 이강의 태도에, 곁에 있던 안나와 아셀은 동시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저 성격 파탄 황태자가 황녀를 숙녀로 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당초 할 수가 있었어야 말이지.
정말이지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은 주군의 모습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청도운은?”
“침실에 계십니다.”
이강의 물음에 안나가 곧장 답했다.
“그래, 가지.”
“…도운 님의 침실에 계십니다.”
도운이 이강의 영역에 있는 것은 더없이 마땅한 일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제 침실로 향하려던 이강은 안나의 뒷말이 나직하게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췄다.
“뭐?”
“도운 님께선 전하의 침실이 아닌, 도운 님 본인의 방에 계십니다.”
“…이유가 뭐지?”
도운의 갑작스러운 변덕에는 이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그를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이강의 차분한 목소리가 너른 복도 위에 고요히 흩어졌다.
그러자 잠잠히 무언을 씹던 안나가 다소 비장한 낯으로 그의 주군을 올려다보았다.
“전하, 전하를 모시는 자로서 감히 한 말씀만 올려도 되겠습니까?”
“싫다 해도 올릴 기센데.”
뜬금없는 안나의 반항적인 기세가 의외라는 듯, 이강의 눈썹이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섰다.
딱히 막지 않겠다는 주군의 뜻을 받아들인 안나는 주저 없이 결연한 목소리를 전했다.
“도운 님께선 깨침이 늦고 감각이 예리하지 못한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둔하시죠.”
가감 없는 도운에 대한 평가가 거침없이 이어지자 이강이 눈을 가느다랗게 휘며 흥미를 보였다.
매번 도운에게 호의적으로 굴기에 마냥 따르는 줄로만 알았더니, 속으론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네게 뒷담을 하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위험한 발언을 제 앞에서 할까, 새삼 목적이 궁금해졌다. 이강이 담백하게 호응하자 안나는 아직 하고픈 말이 더 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보다 더하십니다. 알 만큼 아시는 분이 이리도 무심하시다니요. 때아닌 한파가 와도 전하보단 따뜻할 겁니다.”
“…앞담도 취미인가?”
단숨에 이강의 눈매가 서느렇게 변했다. 그에 섬찟함을 느낀 안나는 재빨리 아셀을 흘겨보았다.
그 매서운 눈빛을 본 아셀은 두어 번 눈을 껌벅이더니, 이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안나의 말이 맞습니다. 전하께선 도운 님께 좀 더 신경 쓰셔야 합니다.”
“아셀, 자네까지?”
이강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아셀을 돌아보자 그는 큼큼, 작은 헛기침과 함께 반대편으로 시선을 피했다.
길다면 길었을 호위 인생, 이렇게 주군에게 당당히 충언(?)을 한 건 처음인지라 안나와 아셀은 쩍쩍 말라붙는 입안을 선연히 느끼며 긴장했다.
이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안나와 아셀은 등골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이강의 성격상, 두 사람을 당장 지하 감옥에 처넣는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감히 황태자의 앞을 가로막는 것도 모자라 그의 사적인 일에 관해 이래라저래라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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