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별거 아니지만 선물이에요. 과실주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나는 품에 있던 사과주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이안이 백이강은 싫어하더라도 나까지 싫어해선 안 됐다.
성력도 성력이지만 메인 주인공에게 미움받는 건 꽤 고달픈 일이었다. 여차하면 얘로 갈아타야 할 날이 올 수도 있잖아?
물론 절대 안 올 것 같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까! 원만한 관계! 수월한 의사소통! 친근한 이미지!
……가 내가 원하는 거다.
“말동무해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어라.”
그런데 순간 말을 멈춘 이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언가 충격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뭐지, 내가 잘못 가져왔나? 실수는 없었을 텐데?
“이거…… 제국에 몇 병 없다는…… 제국력 999년산 사과주……?”
“……예?”
지금 쟤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무튼, 뭐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지?
“이 귀한 사과주를 절 위해 구해 오신 겁니까? 마법사님…… 진짜 좋은 분이시군요.”
진심으로 감동한 듯 보이는 검푸른 눈동자가 반짝반짝 나를 향해 쏟아졌다.
뭐야, 귀한 거라고? 하지만 레지가 분명 흔해 빠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아, 예. 뭐…… 좋아해 주시니 저도 좋네요.”
떨떠름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자 이안은 같이 마시자며 손수 와인 잔을 내왔다.
아, 또 술인가요……? 나 왜 얘랑만 만나면 술을 마시는 것 같지? 설마 이안은 나만 보면 술이 당기나?
그나저나 어떻게든 한번 만져보려고 온 입장이다 보니 나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안의 선의는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양심에 구멍이 송송 나고 있었다.
“향이 엄청나네요. 정말 마셔보고 싶던 술인데 이렇게 감사할 데가.”
이안이 술에 진심인 것 같다는 내 생각은 다행히 적중한 듯했다.
어째 레지랑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부류인데…… 성격이 워낙 천지 차이라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빈 잔은 금세 채워졌다. 그나저나 이거 귀한 술이라더니 왜 이렇게 퍼주는 거야? 너 혼자 먹으라고 갖다준 건데 이걸 이렇게 비우네.
한참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비우다 보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합법적으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선에서 확실하게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건 바로……!
“저기, 저하.”
“네, 마법사님.”
술이 들어가서인지 이안은 조금 전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물론 표정은 여전히 담백했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한층 고양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사기…… 아니, 작업 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저하께서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흠, 미래라…… 당연히 궁금합니다. 아마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요? 그 위대하신 신마저도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 이안은 넉살 좋게 말을 이었다. 그래, 신마저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빙의자는 알아요. 너의 미래를요.
“제가 저하의 미래를 좀 봐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사실 제가 그쪽에 탁월한 재능이 있거든요.”
슬그머니 웃으며 미끼를 던지자 이안의 까만 눈 위로 새파란 섬광이 스쳤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는 낯으로 남은 술잔을 비웠다.
“그러니까 지금, 마법사님께 주술사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오, 이것 봐라.
이안의 발언은 꽤 파격적이었다.
이유인즉, <파국의 이니시아>에서 특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따져보면 사실 꽤 많지만, 그들 중 힘을 인정받는 것은 유일하게 마법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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