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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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낯선 이의 등장에 순간 시야가 캄캄해졌다.

누구지? 백이강이 없는 지금, 황태자궁에는 소수의 시종과 필립, 그리고 아셀과 나뿐일 텐데.

의문을 품고 고개를 든 내 앞에는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눈부신 백금발은 낮에 봐도 환할 만큼 찬란한 빛을 냈고, 기다란 속눈썹 아래 위치한 백금안은 다정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런, 부딪칠 뻔했군. 어딜 그리 급하게 가지?”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른하게 들려왔다. 귓가를 맴도는 신묘하고도 달콤한 음성이 경계심을 녹아내리게 했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내가 모를 수는 없었다.

빙의한 이래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임과 동시에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자이니 말이다.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문제의 2황자, 피엘 데르지오의 등장이었다.

“호오, 우린 초면일 텐데…… 나를 아나?”

내가 먼저 인사할 줄은 몰랐는지, 기쁜 눈으로 생긋 웃는 모습이 더없이 인자하고 자애로워 보였다.

저번 까마귀 마수 건도 그렇고, 피엘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마다 뜬금없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는 편이다. 지금처럼.

그보다 방금 실수했다. 모른 척했어야 했는데 당황해서 그만…….

“그…… 저하께선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자 피엘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윽, 예쁜 얼굴로 저렇게 스산하게 웃는 건 백이강만 하는 줄 알았는데.

피엘의 외관은 소설에서 묘사되고 웹툰에서 구현된 바와 꼭 같았다.

이러니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 당연했다.

무엇보다 피엘은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백이강과 미묘하게 비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눈에 척 하고 백이강과 형제라고 확신하기에는 머리 색도 눈 색도 전부 달랐지만, 어딘가 은근하게 백이강의 얼굴이 보여서 기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이 와중에 다행인 점은, 둘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백발에 자안인 백이강은 선황후를 닮았고, 백금발에 백금안을 가진 피엘은 현 황제를 꼭 빼닮은 편이었다.

백이강이 싸늘함이 물씬 풍기는 철혈 재상 느낌이라면, 피엘은 해바라기밭에서 꽃이나 가꿀 법한 다정하고 고운 인상이었다.

원작에서 피엘이 하는 짓이나 그 성정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주제에 맞지 않는 살가운 외모였다.

하지만 뭐, 얼굴만으로는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니까.

“내가 유명하다고? 몰랐네. 뭐로 유명한데?”

피엘은 흥미롭다는 듯 살갑게 웃으며 물음을 던졌다.

마음 같아선 모른 척하고 어물쩍 넘어가고 싶었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백금안이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 왜 저런 걸 묻고 그래! 네가 유명하긴 뭘로 유명하겠냐, 당연히 속내 까만 음침한 여우 새끼로 유명하지.

따지고 보면 백이강보다 더한 흑막이 너야, 너.

“음…… 얼굴?”

에라 모르겠다!

툭 튀어 나간 내 대답에 피엘의 얼굴이 잠시간 멍해졌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백이강과 비슷해서 봐줄 만하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는데 다행히 피엘의 심기를 거스르진 않은 듯했다.

으음, 그나저나 이렇게 표정이 다채로운 사람을 보니 기분이 좀 이상하네…….

당장 내 주변에 있는 필립이나 아셀, 백이강은 대체로 무뚝뚝하게 굳은 얼굴이라서 그런가, 이런 면만 두고 본다면 피엘이 좀 더 사람 냄새가 나는 편이었다.

“……풉.”

꾸역꾸역 둘러댄 내 답을 들은 피엘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연신 즐겁게 웃어댔다.

অধিকাৰীয়ে এনেধৰণৰ অন্ত ঘৃণা কৰে!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