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준비되어 있으니 몸만 맡기시면 돼요!”
안나의 호기로운 외침에 괜히 마른침이 넘어갔다. 난 뭔가 준비해 달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보나 마나 이건 백이강이 시킨 짓일 텐데…….
불신으로 가득한 내 눈을 가볍게 무시한 안나는 나를 이끈 채 어느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일단, 이미 방문 전적이 있는 인명부나 마법부와 문 크기는 비슷해 보이는데.
“여기가 어디야?”
“후후, 청도운 님. 지금부터 놀라지 마세요!”
안나는 스리슬쩍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벌컥, 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건…….
“미친.”
속절없이 눈에 꽉 들어차는 광경에,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 짤막한 욕지거리가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아, 어쩐지. 어디 가는 건지 통 말을 안 해주더라.
“뭣들 하는 거야? 빨리빨리 움직여! 제복 수량 못 맞추면 우리 전부 뒈진다!”
“이 제복 금실 수놓은 새끼 누구야? 용을 지렁이로 만들어놓으면 어떡해!”
“으흑흑. 누구 사파이어 브로치 보신 분? 훔쳐 간 새끼, 걸리면 아주 으깨놓을 테다! 아, 그 전에 내가 먼저 뒈지려나.”
“토끼 사이즈 아는 사람?”
“어떤 새끼가 마네킹에 뽀뽀했어?! 빌어먹을 주둥이를 콱 그냥!”
내가 황실에서 꺼리는 곳은 여러 군데지만, 그중 세 번째로 안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이곳이 바로 데르지오 황실의 자랑스러운 재단실이랍니다! 황실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지요.”
……재단실이다.
따로 원한이 있는 건 아니고, 원작에서 평정심을 통 잃지 않는 3황자가 가장 곤란해하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여기 사람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물론 말이 안 통하는 건 아니다. 그저 결과물이 자기 눈에 완벽히 차지 않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을 뿐.
타협? 그딴 거 없다. 이 사람들은 제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면 무조건, 반드시 완벽하게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덕분인지 데르지오 황실 사람들은 항상 어디 내놓든 꿀리지 않는 작품…… 아니, 고퀄리티 옷을 입고 다닌다.
그래도 나는 일개 마법사니까 평범한 디자이너가 맡지 않으려나? 안 그래도 재단실 또한 마법부와 큰 차이 없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보통 직급이 높은 디자이너일수록 귀한 사람들을 맡으니까 나는 아닐지도.
“청도운 님의 옷을 맡게 된 분은 바로바로! 수석 디자이너 ‘라타’ 님이시랍니다. 역대 황태자들의 복장을 담당하신 세기의 귀인이시죠.”
이어지는 안나의 활기찬 말에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이건 얼어붙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X됐다…… 저거 3황자를 담당하던 옷에 미친 놈이잖아!! 오죽하면 내가 조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어?!
심지어 원작에서도 라타가 만든 옷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댓글에 그를 찬양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 앞에서는 빌런이고 주인공이고 전부 평등하기 때문이다. 고고하던 메인 주인공조차도 라타의 막무가내 치수 재기에서 표정을 잃었다.
분명 백이강도 별반 다를 거 없을 거다. 그리고…… 나도 그렇겠지.
“안나, 옷은 다 만들어진 거지?”
“그럼요. 오늘이 건국제 당일인걸요. 하지만 라타 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귀재이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중간 수정이 가능할 거예요.”
안나는 매끄럽게 웃으며 무서운 말을 뱉었다. 중간 수정이 가능하단 소리는, 내가 계속 이 재단실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소리와 같다.
“그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음, 그야…… 라타 님 마음에 드셔야죠.”
“내가?”
“아뇨, 옷이요.”
누구보다 단호한 안나의 대답에 입이 절로 다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