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인데 이렇게 낯설어도 되나.”
오랜만에 내 방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매번 백이강의 집무실에서 그와 함께해서 그런가, 오늘은 왠지 1인분만 차려진 테이블 위가 낯설게 느껴졌다.
“안나.”
“네, 도운 님.”
“이런 축제 날에 황실 마법사들은 보통 뭘 해?”
내 물음에 안나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빈 찻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준 안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청도운 님께서는 이번 축제가 처음이시죠? 보통 마법부에서는 귀빈의 안전을 위해 결계를 치거나, 부족한 인력을 신묘한 힘으로 도와주신답니다. ……종종 묘기도 보이시고요.”
꽤 다양한 일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만히 말을 듣고 있는데, 마지막 말이 은근히 거슬렸다.
묘기라니, 마법사가? 그 귀하다는 고급 인력이 그런 재롱을 부린다고?
“묘기를 부린다고?”
“네, 아! 마침 저기 보이네요. 이때만 볼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안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창밖이 보였다.
그리고 그 새빨간 허공을 다채롭게 비추는…….
“……저게 뭐야?”
암만 봐도 불꽃놀이 같은데?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게 딱 그건데?
“마법을 이용한…… 으음, 뭐라더라. 섬광탄……? 아무튼 빛을 이용해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마법이라고 들었어요.”
“불꽃놀이 같은 거네.”
“조금 달라요. 그건 낮에 볼 수 없지만, 저건 밝을 때도 선명하게 보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러했다. 불꽃놀이는 밤에 가장 잘 보이고 화려한 대신 낮에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저건 지금이 밤이 아닌데도 환하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깐, 그럼 지금 저걸 보이고 있는 게 레지랑 블루라는 거야?”
“마법부의 수장이신 세드릭 님께서 부재중이시니 그럴 겁니다.”
새삼 백이강 옆에 붙어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마터면 나도 저기 나가서 불꽃놀이 착취 노예로 쓰일 뻔했다는 거잖아?
“저런 걸 매번 해? 마법부도 참…….”
좋은 곳은 못 되는구나, 라는 말을 덧붙이려던 그때였다. 안나의 표정이 잠시간 섬뜩하게 변했다.
“지금 보시는 저건 황태자 전하의 명이십니다. 다른 때는 한 적이 없어요. 그분께서는 오래전부터 마법부의 존폐를 논하셨던지라…….”
“……누구?”
백이강이 마법부를 고깝게 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괴롭히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백이강도 알 거다. 마법부가 해산할 일은 영영 없을 거란 것을…….
그런고로 그냥 괴롭히는 거다. 어차피 안 될 일이니 마음껏 갈구겠다는 소리다.
진짜 악마가 따로 없네……!
블루와 레지가 백이강을 꺼리는 이유가 매번 새롭게 갱신되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백이강의 괴롭힘을 견디고 있는 마법부가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 보니 원작에서 블루와 레지가 피엘을 도와 흑마법 검출 마석을 만들었던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백이강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라니! 나 같아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을 듯.
“근데 저런 건 왜 시킨 거야? 마법부가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전하께서 ‘마법부에서도 귀빈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정말 그렇게만 말했어?”
그 백이강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자 잠깐 침묵하던 안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음.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니 그런 거라도 시켜야겠지’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럴 줄 알았다. 백이강이 그렇게 선하게 말했을 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