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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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지?”

예상보다 훨씬 차분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돌아왔다.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담백한 낯이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차라리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인다면 그에 맞춰 대응할 텐데, 반응은커녕 아무런 감흥조차 없어 보이니까 막막해서 더 긴장이 올라섰다.

“말 그대로야. 네 병을 고치려면 3황자의 힘이 좀 필요하거든. 그걸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 만나야 하고.”

“그렇게 해.”

……어라?

안 된다며 단칼에 자르거나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싫은 기색을 보일 줄 알았는데, 백이강은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모자라…….

“필립.”

“예, 전하.”

“이안에게 연락해서 대신 일정을 잡도록. 구체적인 일정은 청도운이 조율하는 걸로. 내 인장을 찍으면 그쪽도 거부할 수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청도운 님, 잠시 이쪽으로.”

“……아, 네!”

일사천리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설마하니 백이강이 직접 나서서 이안과의 자리를 주선해 줄 줄이야.

“이쪽에 원하시는 일정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너무 이르거나 늦은 밤만 아니라면 대체로 괜찮을 겁니다.”

“으음.”

필립이 준 종이 위에 내가 만나길 바라는 날짜들을 적자, 그는 시간만 살짝 확인하고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종이 끝자락에 황태자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붉은 인장을 찍었다.

그러고는 3황자 쪽에 통보하고 오겠다며 금세 사라졌다.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만나길 요청한 건 난데, 그걸 ‘통보’하고 오겠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엄청나게 무례한 짓이었다.

근데 백이강에게 그런 상식이 있을 리가.

게다가 그걸 당연하다는 듯 이행하는 필립도…… 그리고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 나도 하나같이 제정신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덕을 본 건 나지만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했다. 이안의 성격이라면 괜찮다고 할 테지만 말이다.

정작 성을 내는 건 이안을 따르는 아랫것들이겠지. 아마 아무리 황실 마법사라도 황자님께 이럴 순 없는 거라며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하다.

이안이 암만 날 기꺼워하더라도 그 주변 이들이 날 따갑게 볼 게 뻔히 예상되니, 그와의 만남이 가시방석인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겨내야지 뭐.

필립은 금방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없이 처리되었으니 원하는 시간에 만나러 가면 된다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마침 첫 약속이 두 시간 뒤네요. 안나에게 말해둘 테니 옷을 갈아입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황족과의 만남에 있어서 적당한 겉치레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잠옷같이 편하게 입고 있는 내 낙낙한 옷차림을 싸늘하게 훑은 필립은 입술을 길게 늘어뜨린 채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가 편하긴 하지만, 저번과 다르게 오늘은 공식적인 약속이니 대충 입고 가는 건 곤란할 듯했다.

무엇보다 백이강이 황태자 신분을 이용해 강압…… 아니, 공식적으로 주선한 자리이니만큼 허술하게 입고 갈 수는 없었다.

지금도 백이강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도와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야 좋았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지!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돼서 좋고, 앞으로의 일정까지 단숨에 잡혔으니 더더욱 좋았다.

“고맙긴 한데…… 무슨 속셈이야?”

작은 목소리로 넌지시 물음을 던지자 올곧던 백이강의 눈썹이 슬그머니 일그러졌다.

“기껏 도와줬더니 속을 따지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네가 이렇게 순순히 도와주는 게 좀 이상하긴 하잖아? 가서 뭐 할 건지 묻지도 않고.”

어색하게 미소 지은 나는 슬쩍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뭐 애꿎은 사람을 느닷없이 의심하나? 그동안 네가 보인 행적이 있으니 이러는 거지.

অধিকাৰীয়ে এনেধৰণৰ অন্ত ঘৃণা কৰে!Donde viven las historias. Descúbrelo ah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