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셀.”
답이 없다. 그저 싸늘하다.
“아셀? 대체…….”
여전히 조용하다. 아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침묵할 게 분명했다.
“왜 자꾸 따라오는 건데요……!”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멀거니 기다리던 나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위협적인 존재감을 뿜던 기척도 나를 따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홱 고개를 돌리자 여느 때와 같은 아셀의 무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아무런 감정도, 기분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무(無)가 깃든 올곧은 푸른 눈이 나를 묵묵히 담아내고 있었다.
“글쎄, 이번엔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그냥 마법부 정기회의에 참석하러 갈 뿐이라고요.”
나 참, 말을 해도 본인이 따르는 주군의 명이 아니면 도통 듣지를 않으니 별수가 있나.
내가 아셀의 호위를 난감해하는 이유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제국 내외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황태자의 그림자 호위인 그가 대놓고 나를 쫓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림자 호위’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따라오는 게 정상 아니야?!
그도 그럴 게, 백이강이 새롭게 붙여준 또 다른 그림자 호위는 곁에서 따라붙는 아셀과 달리 안 보이는 곳에서 나를 호위 중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바로 옆에 있는 거냐고요.
안 그래도 요새 정체불명의 남자가 황태자를 꼬드겨서 황실의 새로운 낙하산 마법사로 들어왔다며 흉흉한 소문이 도는데, 이러면 완전 대놓고 그 소문의 주인공이 나라고 홍보하는 격이잖아……!
그러니까 이 모든 사달은 조금 전, 내가 백이강을 찾아가면서부터였다.
‘이강아, 그거 알아? 듣자 하니 황실에서 반년 주기로 열리는 마법부 정기회의가 있는데, 그게 오늘이래.’
때마침 열심히 일하고 있는 백이강이 한참 정신없을 시간대인 게 신의 한 수였다. 일부러 그의 손이 바쁠 때를 노리고 간 것도 반쯤은 의도한 일이었다.
좀 야비하긴 해도 그래야 혼란을 틈타 허락을 받아내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래서 거기 좀 다녀올까 싶어. 마법부의 수장이 날 직접 초대했더라고. 어쨌든 나도 황실 마법사고, 다른 마법사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하긴 개뿔, 사실 내가 마법부 정기회의에 굳이 참석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장의 이름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 외의 것은 대충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기존 황실 마법사는 단둘뿐인데, 그 둘은 나중에 2황자인 피엘의 편에 서서 백이강이 흑마법사임을 증명할 흑마법 검출 마석을 만든다.
그렇게 되면 백이강은 황제가 못 된다. 세상 어느 곳에도 ‘흑마법사’로 검증된 자가 황제인 나라는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그 전에 먼저 친해져서 그들이 피엘의 수족이 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릴 생각이었다.
근데 이걸 백이강에게 미리 말해 버리면 지금 당장 마법부를 갈아엎으려 들 게 빤하니까…… 어쩔 수 없지.
‘멍청한 오합지졸만 모인 곳이다. 그래도 가고 싶나?’
‘일단은 내가 신입이니까. 얼굴 정도는 비쳐야 하지 않겠어?’
내 말에, 서류 위를 바삐 움직이던 백이강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고개를 든 그가 날카로운 눈을 하고는 단호하게 답했다.
‘쓸데없는 소릴. 그딴 거 안 해도 돼. 말했잖아, 넌 내 소속이라고.’
섬뜩하게 올라서는 위기감이 서늘했다. 백이강이 저런 눈으로 얘기할 때는 늘 끝이 안 좋았던 탓이다.
어쩔 수 없지. 필살기다!
‘나, 난 그냥…… 마법부는 황실의 심장이라고 불릴 만큼 정보가 많은 곳이니까, 네 소원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이유라면, 그러든지.’
내 애잔하고 슬픈 연기가 효과를 보인 걸까, 백이강의 승낙은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