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벅끔벅. 눈이 떠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릴 만큼 무거운 눈두덩이가 느릿느릿 올라갔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지나치게 고요한 걸 보니… 나, 진짜 뒈졌나? 그럼 여긴 설마 천국?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이 지옥에 떨어질 리 없으니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내 망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당히 익숙한 방 한편의 커다란 창문 너머로 밤하늘의 달빛이 쏟아지고 있는 걸 봐버린 탓이었다.
아. 새벽이라서 조용했구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은 새벽이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쩐지 등허리가 뻐근해진 나는 침대에 들러붙듯 누워 있던 무거운 몸을 꾸물꾸물 일으켰다.
이제 보니 내 위로 푹신한 이불이 두 개나 덮여 있었다. 왠지 몸이 무겁다 싶더니, 이불 때문이었구나?
새하얗게 부서지는 달빛에 의존한 백이강의 침실은 늘 그렇듯 적막하고, 고상했다.
그래서인지 현실 감각이 없었다.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기에는 새벽녘 백이강의 침실 풍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흐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한 나는 지나칠 정도로 몸이 뻑뻑하다는 것을 느꼈다. 꼭 시체가 된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 같달까.
하여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목을 양옆으로 돌려가며 간단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침대 옆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백이강을 발견했다.
“허읍…!”
난데없는 다른 이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와악…! 저렇게 구석에 처박혀서 조용히 자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냥 내 옆에 안 보이니 없구나, 했는데! 진짜 심장 떨어질 뻔했어!
두근두근! 기겁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좀 알 것 같다. 내가 진짜 살아 있다는걸…….
그나저나 잘 자네. 예전의 백이강이었다면 저기 앉아서 일하고 있었겠지? 나는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을 테고.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와서인지 주변 광경이 찬찬히 눈에 담겼다.
그런데… 저게 다 뭐냐?
방 한쪽에 쌓인 온갖 향이 나는 차와 별의별 약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전부 이안이 가져다준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타 등등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풀들과 여러 가지 우중충한 색의 약병들도 보였다.
그 사이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입구가 너른 그릇에 담긴 무지개색 액체가 희한한 빛깔을 선보이며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아니, 불도 없는데 너는 왜 끓고 있나요?
섬뜩한 기분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다행히 내가 말짱하게 숨을 쉬고 있는 걸 보면 독약은 아닌 모양이었다.
“저런 기이한 걸 처먹고 용케도 살아 있네.”
다만 아직 손에는 경련기가 남아 있었다. 슬쩍 왼손을 들자 움찔움찔, 손가락 마디마디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석하게도 독 기운이 아직 완전히 빠져나가지는 않은 듯했다.
여기서 뒈졌다면 맨 처음으로 초기화되는 건데, 진짜 아찔했네. 하.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피엘이 수를 쓴 아킬라라면 독에 내성이 없는 내가 홀로 이겨내긴 어려웠을 거다.
애초에 기본 아킬라로도 목숨이 간당간당할 텐데, 강화된 아킬라라면 더욱 희망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유능한 마법사라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을 먹고 내성을 기른 황자들과 같은 내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나는 단지 마법을 쓸 줄 알 뿐이고, 그건 독을 이겨내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킬라는 흑마법 같은 것도 아니고, 그저 독초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성력으로도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이안이더라도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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