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둥이 치던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더니 곧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거대한 물줄기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냥 비도 아니고, 무려 천둥 번개…….”
섬찟한 기운이 등허리를 스치는 듯했다.
한 번이라도 책 속에 빙의해 본 자라면 알 거다.
원작 소설이 꼴에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빙의자가 그 세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꾸려 들면 본래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별 트릭을 다 구비해 둔다는 것을.
그리고 이 불길한 예감이 맞다면, 저 천둥 번개는 그 트릭 중 하나다.
“아셀, 백이강은 지금 어디 있어요?”
“집무실에 계십니다.”
“가요, 당장.”
내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자 아셀은 늘 그렇듯 담담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그도 그럴 게 백이강이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반드시 침실에만 있으라며 신신당부한 탓이었다.
아셀은 내 호위이기 전에 백이강의 그림자이니, 당연히 제 주군의 말을 듣는 게 먼저였다.
그러니 나를 막아서는 이유는 알겠지만…… 이대로 멍청히 침실에 앉아서 바깥 상황을 하염없이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청도운 님, 하지만.”
“급한 거니까 괜찮아요.”
내가 일전에 마른하늘에 비도 내리게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한 건 허세에 찌든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하는 건 말이 다르지! 이미 진행된 자연을 멎게 하는 건 진짜 스케일이 큰 마법이라고.
무엇보다 비가 이렇게나 많이 내리면 그놈들이 동상을 폭파하는 일이 더 수월할 거야. 흔적도 금세 지워질 테니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인 셈이지.
이건 위험해.
“백이강!”
재빨리 집무실까지 달려간 나는 문을 벌컥 열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때마침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백이강과 퍼뜩 눈이 마주쳤다.
밖에 저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지금 어딜 가려고…….
“뭐지? 침실에 얌전히 있으라 했더니…… 아셀.”
“죄송합니다, 전하. 하지만 청도운 님께서 급하시다고 하여…….”
나를 본 백이강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이런 와중에도 내 감금 걱정이냐!
“어딜 가려고?”
“번개가 생각보다 많이 쳐서 동상 근처에 결계를 치러 간다.”
엄청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백이강이었다.
결계를 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나도 아직 결계를 못 치니까 이에 관해서는 말 다 한 셈이다.
“너 혼자?”
“그래. 결계술사인 레지가 연락이 끊겼으니 내가 가야지.”
레지가 연락이 끊겼다고? 아니, 그보다 레지가 결계술사였어?!
원작에선 이런 말 없었잖아! 하여간 조연에 관한 서술은 진짜 박하다니까!
아무튼, 백이강은 분명 흑마법을 쓰려고 할 거다. 애초에 검은 힘을 다루는 체질이니 일반적인 마력으로 결계를 친다면 미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도 갈래.”
“안 돼.”
말 끝나기 무섭게 거절이 돌아왔지만 이미 예상한 반응인지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백이강, 너 가서 흑마법 쓸 거잖아. 그냥 내가 할게.”
“청도운. ‘마법’과 ‘결계’는 그 결이 달라. 게다가 너는 무경험자라 못 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법과 결계는 한 끗 차이였지만 그 선만은 확연히 달랐다.
사실 백이강의 말마따나 결계를 쳐본 적도 없고…….
그럼 좀 어때? 결계를 못 치면 마력으로 방패라도 만들어서 막으면 그만이지. 내가 빙의 짬밥을 허투루 채운 줄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