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물러가라.”
이안이 누워 있는 도운에게 다가서는 것을 본 이강은 한층 험악해진 눈을 섬뜩하게 부라리며 의원들을 향해 성가심이 역력한 손을 내둘렀다.
난데없는 퇴각 명령에 이것저것 약들을 꺼내놓았던 황의들은 횡설수설하며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지금 당장 나가라고? 이대로? 우리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
환자를 앞에 두고 성과 없이 쫓겨나는 것만큼 의원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머뭇대는 광경을 본 이강의 보랏빛 눈 위로 시퍼런 안광이 스쳤다.
“하등 쓸모없는 것들. 죽여 버리기 전에 썩 꺼져라.”
당장 꺼지지 않으면 손수 삶의 막을 내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이강의 서슬 퍼런 시선을 마주한 의원들은 그제야 허겁지겁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윽고 평소와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그제야 이강의 발이 도운이 있는 침대로 향했다.
이강이 가까이 온 것을 본 이안은 조심스레 말문을 뗐다.
“위력이 강해진 아킬라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이대로면… 위중합니다.”
“뻔히 아는 상태를 두 번 읊어줄 필요는 없다.”
이안은 단번에 아킬라가 원인임을 파악했다.
물론 그 역시 황족이니만큼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마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떤 힌트도 없이 곧바로 문제점을 알아낸 것은 확실히 황의보다 쓸모 있음을 증명했다.
도운의 이마 위로 이안의 손이 올라갔다. 연한 초록빛이 반짝반짝 흩어지며 싱그러운 향을 흘렸다.
“썩… 좋지는 않네요.”
곧이어 손을 뗀 이안은 도운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것이 땀인지, 아니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인 신체가 내지르는 눈물인지 알 길은 없었다.
“도운 님은 독에 내성이 없지만 일반 사람보다 신체 조건이 월등히 좋습니다. 급한 대로 성력을 이용해 맹독을 중화했으니 당장 목숨이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지금 당장’ 죽지는 않을 거란 소리일 뿐, 죽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 미묘함을 눈치챈 이강은 차분한 표정으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언제 깨어나지?”
이강의 질문에 이안은 잠시간 말없이 도운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깊은숨을 내쉰 이안은 한층 가라앉은 검푸른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답했다.
“…일단 오늘은 아닙니다. 본디 아킬라가 맹독초는 맞으나, 이 정도로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누군가 악의적으로 성분을 강화한 모양입니다.”
원하는 답이 돌아올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이강은 표정 변화 없이 다시금 침묵을 입에 담았다.
“도운 님 안에 아직 내독이 남아 있습니다. 아르테의 허브차가 내독을 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황녀께 도움을 받는다면 차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안나.”
“예, 전하. 다녀오겠습니다.”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강이 안나를 불렀다. 달리 명이 없었음에도 제가 해야 할 일을 숙지한 안나는 빠르게 허리를 숙인 후 침실을 나섰다.
“그럼, 저도 제 방에 도움이 되는 약초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안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부는 수도에 비해 약초학이 꽤나 발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져온 약재 꾸러미가 이안의 방에 한가득했다. 그중 조금이나마 도운의 상태를 낫게 할 약재가 하나쯤은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막막한 도운의 상태가 호전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에 마음이 급해진 이안은 이강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서둘러 침실을 빠져나갔다.
“아셀, 네프론.”
“예, 전하.”
이강의 부름에 아셀이 대답함과 동시에 네프론도 어디선가 스르륵 나타나 허리를 숙였다.
“피엘의 동태를 살펴라.”
“존명.”
아셀이 대답하고, 네프론은 고개를 수그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은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명을 이행하러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