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보다시피 쌩쌩해.”
백이강의 물음에 간단히 답한 나는 문제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행히도 차를 마저 마신 덕분인지 어느새 손의 떨림이 멎어 있었다.
손을 쥐락펴락해도 달리 나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듯했다.
백이강은 알까? 간밤에 내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을.
뭐, 저놈의 무뚝뚝한 성정이면 내가 진짜 죽었더라도 그리 슬퍼할 것 같진 않다마는.
그나저나 사망 시에 자동으로 부활하는 게 보상이라니! 보기 드문 히든 퀘스트라서 그런가, 보상안의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었다.
앞으로 히든 퀘스트가 있으면 고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무조건 받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너 때문에 피곤해. 귀찮고.”
별안간 백이강이 짜증이 담긴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새하얀 그의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넘어가며 헝클어졌다.
…근데 이게 환자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일단은 내가 아직 아픈 사람인데 말이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상처받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려는 찰나, 백이강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앞서보다 한층 더 서늘해진 목소리였다.
윽…! 겨우 살아난 사람한테 악담이라니, 진짜 너무하네!
듣기 싫은데 어쩌지? 기침 한 번 더 할까? 아픈 척하면 저 망할 백이강의 잔소리가 끊길지도 몰라.
“아무거나 주워 먹고.”
“아니, 내가 언제 아무거나 주워 먹었어?!”
딴 건 몰라도 이건 진짜 억울하다! 엄청 억울하다!
내가 급히 반박하고 나서자 백이강의 보랏빛 동공이 형형히 번득였다.
“뭐가 들었을 줄 알고 남의 차를 대신 마셔?”
“……다량의 각설탕?”
“하아….”
보기 드문 백이강의 한숨이 노골적으로 터졌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찻잔에 각설탕을 한 9개 넣었던가? 되게 달았다.
근데 나도 죽음의 맛이 그렇게 달 줄은 몰랐지….
…라고 한 번 더 농을 던졌다가는 백이강의 한숨으로 바닥이 뚫릴지도 모르니까 참자.
“어쨌든 살아 있잖아.”
사실 죽었었지만.
하핫. 멋쩍게 웃으며 뒷말을 삼킨 나는 반대편으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정말이지, 히든 퀘스트가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다.
그대로 초기화됐다면 지금쯤 밧줄로 꽁꽁 묶여서는, 날아오는 칼날에 몸을 맡기고 있었겠지.
그러고는 웰컴 대답이니 뭐니가 발동해서 어색한 적막이 흐르고 있을 거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전부 찻잔에 독을 탄 나쁜 놈, 피엘이 배후로 있었다.
그 새끼가 범인이라고 소리치고 쓰러졌어야 했는데, 눈앞이 깜깜해지는 바람에 그만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아쉬워 죽겠네.
“아, 백이강. 그, 범인 말인데….”
“2황자다.”
슬그머니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백이강이 답을 말했다.
뭐야, 범인 색출이 왜 이렇게 쉽고 간편해?
“어? 어… 알고 있었어?”
“그놈밖에 없는데 알아볼 게 뭐 있어.”
맞는 말이긴 하다. 후보군을 추려봤자 뒤로 봐도 앞으로 봐도 범인은 피엘뿐이니까.
“그래도 증거가 없을 텐데.”
“방을 수색할 거다.”
간략히 돌아온 백이강의 대답에 의구심으로 눈이 크게 뜨였다.
피엘이 바보도 아니고, 방에 흔적을 남겨둘 리 없었다. 진즉 다 지우거나 숨겼겠지. 당연히 찾아봤자 헛수고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