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71화

1 0 0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는지, 피엘의 표정은 조금 전에 비해 다소 굳어 있었다.

서류의 노예니 뭐니 하는 내 말이 장난스럽게 느껴진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나라도 황당할 것 같은데 남이 믿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근데 진짜인 걸 어떡하냐고. 나도 내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고…….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엘은 금세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고 시종을 불러 후식으로 차를 내오라 일렀다.

이윽고 달콤한 향이 나는 따뜻한 차가 앞에 놓이자 피엘의 입이 다시금 틈을 보였다.

“청도운.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들어. 그러니… 내 진심으로 조언을 하나 해주지.”

은근하게 흘러드는 말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피엘을 바라보자 그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담백하고 옅은 그 미소가 썩 잘 어울렸다.

“형님께 너무 기대지 마.”

“…그러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괜히 따지고 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실일 뿐이다. 이제 와서 백이강과 멀어지기엔 나는 너무 멀리 왔다.

게다가 이미 소설의 전개가 백이강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근데 이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면 이안도 눈치껏 메인 주인공 자리 내줘야 한다니까!?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백이강을 떠나 피엘이나 이안에게 간다고 한들, 그 둘이 내게 진심으로 감사할 만한 사건은 딱히 없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이강이라고 뭐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주연들에 비하면 감사 인사를 받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으니까.

“형님은 밤하늘을 장식하는 눈부신 유성 같지. 겉으로는 아주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야.”

피엘은 시큰둥한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이강에 대한 경고를 꿋꿋이 이어나갔다.

때마침 차도 거의 다 마셨겠다, 더 이상 피엘과 있을 이유는 없었다.

혹시라도 전처럼 반강제적으로 이상한 만남을 약속하기 전에 자리를 떠나기로 한 나는 피엘을 바라보며 단호히 입을 열었다.

“저하. 저는 타의로 전하의 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떠나도 자의로 떠나지,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순순히 백이강을 떠나는 일은 진짜 없을 거다.

애초에 포악한 성질을 가진 시스템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 저렇게 함부로 말하지 못할 텐데 말이지…. 나 참, 이걸 보여줄 수도 없고…….

“그거, 듣던 중 아쉬운 말이군.”

말은 그렇게 해도 피엘은 전혀 아쉬운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다.

그 삐뚤어진 성격에 순순히 물러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누가 백이강 형제 아니랄까 봐 피엘에게도 은은한 집착의 광기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쯤이면 슬슬 각 캐릭터에게 감사 인사받을 확률을 한번 점검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난 김에 확인해 보기로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척하며 재빨리 시스템을 불렀다.

너무 오랜만에 부른 탓인지 로딩이 길어지기도 잠시, 이윽고 낯익은 네모 창이 시야를 채웠다.

[SYSTEM: 주연 캐릭터 ‘피엘 데르지오’의 감사 확률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새파란 글씨가 허공에서 파도처럼 일렁였다. 머리를 만지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린 나는 재빨리 ‘네’를 눌렀다.

[SYSTEM: ‘청도운’ 플레이어님에 대한 ‘피엘 데르지오’의 감사 확률은 현재 34%입니다.

※본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수치를 반영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갱신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호오. 34%라니, 안 본 사이에 많이 올랐네?

그럼 그동안 피엘이 내게 보였던 자잘한 호의들은 전부 진심이었다는 소린가… 의왼데?

অধিকাৰীয়ে এনেধৰণৰ অন্ত ঘৃণা কৰে!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