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에서 제일가는 애주가라는 특이한 별칭을 가진 레지를 만나러 마법부에 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지에게 서신으로 방문 여부를 묻기 무섭게 무조건 환영하니 당장 오라는 답신이 곧바로 날아든 덕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아무 과실주나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저번에 보았을 때 이안이 술에 꽤 진심이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서 그러기 힘들어졌다.
술에 진심인 자에게 아무 술이나 가져간다면 분명 성의 없는 걸로 보일 거다.
안 그래도 백이강이 다소 강압적인 방식으로 약속을 잡은 터라 나라도 적절히 인사치레를 할 수 있는 급의 선물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음. 연락을 넣어놨으니 마법부에 있긴 할 텐데…….”
레지를 만나기 위해 마법부 앞에 도착하자마자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도착했으니 문을 열어야 할 텐데 괜스레 불안했다.
그렇다고 이 문을 아셀더러 열라고 할 수도 없고, 이것 참 난감하네.
곤란한 심정을 대변하듯, 멀쩡하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세게 뛰었던지 목에서부터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윽, 부정맥인가? 왠지 이건 진짜 스트레스받아서 생긴 리얼 부정맥 같은데.
“하아, 이 망할 트라우마를 어쩜 좋냐.”
탁, 이마를 덮은 손바닥이 열기로 후끈했다.
그때 그 딜x 사건 때문에 문 열기가 무서웠다. 함부로 문을 열었다가 그 커다란 탁자 위에 또 뭔가 있다면 난…… 한동안 또 정신이 혼미할 것 같았다.
“후우.”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숨까지 길게 들이마신 나는 충격 방지를 위해 반쯤 눈을 감은 채 벌컥 문을 열었다.
“……없나?”
실눈을 뜬 채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마법부의 회의장은 깨끗했다. 탁자 위는 물론이고 바닥 또한 먼지 한 톨 없는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야, 이게 뭐라고 마음이 편안해지네. 원래는 이게 정상인데 말이지.
“다행이다…….”
“뭐가?”
“아무것도 없어서…… 헉, 깜짝아!!”
내 얼굴 바로 옆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민 레지 덕분에 화들짝 놀란 나는 심장 부근을 움켜잡고 가쁘게 호흡했다.
와, 나 이러다가 진짜 심장마비 오는 거 아니야? 무슨 사람이 이렇게 기척이 없어?!
어라, 잠깐만. 기척이 없다고? 그럴 리가……. 이상하네?
시대를 뛰어넘는 대마법사가 온 거면 또 몰라. 그저 마법사일 뿐인 레지가 다가오는 것쯤은 내가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방금은 정말 이상하리만치 기척이 없었다.
물론 내가 타인에 대한 감지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건 순전히 육감적인 것에 한정되는 이야기였다.
마법사인 레지나 블루, 그 외에 마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풍기는 기운부터가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모를 수 없었다.
뒤쪽에 있던 아셀도 나와 같은 부분에서 놀랐는지 평소보다 날 선 눈으로 레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레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향해 붕붕 손을 흔들었다.
“안녕, 도운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래봐야 축제 기간 동안 못 본 거 아닌가? 오랜만은 아닌 것 같은데.
슬프게도 레지의 말이 전부 삐딱하게 들렸다. 이건 저놈의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납게 굴다가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테니…… 잠깐 평정심을 되찾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그를 마주하니 속속들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일단, 레지의 볼살 면적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
원래도 살이 찐 체형은 아니라서 그런지 그 미묘한 변화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살이 좀 빠지신 것 같네요.”
“으음, 그럴지도 모르지. 어느 악덕 주군께서 즐거운 축제 기간 내내 날 부려먹으셨거든.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박한 노비 취급은 처음이지 뭐야. 낮은 물론이고 오밤중에까지 바깥에서 몇 시간씩 땀을 흘리는 노동이라니…… 꽤 자극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