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반응이 어떻던가?”루드윅 공작은 에디트에게 저택 안내를 해준 필립을 불러 물었다.
“제 안내를 잘 따라와 주셨고, 저택의 구조를 의외로 잘 파악하셨습니다. 특히 미술품이 전시된 시스틴 홀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이상한 낌새는 없던가?”
“아니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소문과는 달리 굉장히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흥! 리겔호프 백작이 그 정도는 훈련시켜 보냈겠지.”
루드윅 공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가락 끝으로 의자 팔걸이 끝을 톡톡 두드렸다.
뱀 같은 작자에게 훈련받고 왔다 쳐도, 확실히 에디트는 소문과는 달랐다.
어제 결혼식에서도 드레스의 천박함과는 별개로 우아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손님들을 맞았고, 피곤했을 텐데도 종일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반지 교환 때 킬리언이 그렇게나 무례한 짓을 저질렀는데도 화동들에게 다정히 입 맞춰주며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게 처신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라는 세간의 소문과는 어느 하나 들어맞지 않았다.
‘소문은 자극적으로 부풀려지기 마련이라지만…….’
사실, 오늘 아침에 문안 인사를 온다는 소식에 그와 그의 아내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더랬다.
간밤에 킬리언이 신부의 방에서 머물지 않았다는 소식을 이미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와서 따질 줄 알았다.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한 거냐는 둥, 자길 무시하는 거냐는 둥 에디트가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아침 문안 인사를 하러 온 거였다.
일부러 자극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역공만 당한 꼴이 되었다.
‘킬리언, 그 녀석이 일을 어렵게 꼬아놨어.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할 말이 더 없어지잖아!’
킬리언이 리제를 사랑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루드윅 공작도 리제를 제 딸처럼 예뻐했고, 그 아이를 며느리로 맞을 계획이었으니까.
그러나 올해까지는 리겔호프 백작이 랭스턴 대공 쪽에 붙지 않게 목줄을 잡고 있어야 했고, 그랬기에 에디트를 내세운 그들의 결혼 동맹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킬리언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후계자가 될 클리프에게 리겔호프가의 딸을 이어줄 수는 없었고,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킬리언과 에디트를 결혼시켰다.
“서류상의 부부, 그 이상은 제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킬리언은 영혼을 잃은 것 같은 얼굴로 그 한마디를 남겨둔 채 자리를 떴고,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디트가 워낙 악녀로 소문이 자자하니, 킬리언이 그녀를 소홀히 대해도 나중에 에디트를 내칠 만한 명분은 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에디트가 이렇게 얌전할 줄은…….
루드윅 공작이 한숨을 내쉬는데 필립이 옆에서 낮게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보탰다.
“사실은…… 대회랑을 통해 돌아가는 길에, 에디트 아가씨께서 맞은편 발코니의 킬리언 도련님을 목격하셨습니다.”
“목격? 설마……!”
‘목격’이라는 표현에 루드윅 공작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대회랑의 발코니에서는 리제와 두 아들이 자주 티타임을 가졌다.
“예…… 리제 아가씨와 함께 클리프 도련님, 킬리언 도련님께서 차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공작은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어제가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의 방에서 첫날밤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런 신랑놈이 다음 날 아침부터 다른 여자와 시시덕대는 꼴을 봤다.
공작이 에디트였어도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