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플래시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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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죽은 데다 빙의된 영혼이라지만 어쨌든 이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지.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죽음을 본능적으로 피하려 할 테고…….’

곰곰이 생각하던 리제는 천천히 3단계 예외 조건을 결정했다.

[3단계 예외 조건이 설정되었습니다. 3단계 예외 조건 : 죽을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사는, 지독한 패러독스였다.

‘단지 문제라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에디트가 자포자기할 수 있다는 건데…….’

마음 같아서야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라거나 더 말이 안 되는 조건을 걸고 싶었지만, 이 ‘조건’에는 제약이 있었다.

개연성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죽을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 수 있었던 것도, 이야기 내에서 에디트가 자포자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그러니, 딱 그만큼의 위험 확률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강력한 조건이 떠오르지 않아.’

리제는 선득한 기분을 느끼며 앞으로는 에디트를 직접 죽이려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그러나 리제의 지배에서 크게 벗어난 킬리언은 마치 에디트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처럼 움직였다.

에디트를 티타임 자리에 데려온 킬리언은 더는 ‘리제 싱클레어를 짝사랑하는 서브 남주’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내내 에디트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둘은 리제와 클리프를 신경 쓰지도 않는 듯 서로 밀어와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때, 리제는 순진한 얼굴로 킬리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킬리언. 죄송하지만 혹시 다음 주 금요일에 저와 같이 르벨마리 거리에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에 킬리언과 함께 가서 주문했던 구두가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아서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구나.”

“네. 혹시 바쁘시다면 괜찮…….”

“아냐, 아냐. 같이 가지, 뭐.”

킬리언은 에디트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아직은 킬리언을 되돌릴 여지가 있어.’

아직 남아 있는 30% 정도의 지배력이 아예 쓸모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리제는 실망한 기색을 애써 숨기려는 에디트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며칠 뒤, 갑자기 저택에 싱클레어 백작가가 찾아왔다. 그것도 에디트의 자리를 노리고서 말이다.

‘왜 싱클레어 백작가가 내 적이 아니라 에디트의 적이 되어 가는 거야?’

이건 상당히 안 좋은 징조였다.

리제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악역들이 리제를 공격해 줘야 했는데, 그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에디트를 노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건, 에디트가 주인공화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리제는 다급한 마음을 꾹 누르고 킬리언과의 외출을 기다렸다.

그날 반드시 킬리언의 마음을 돌려놔야 했으니까.

리제는 에디트를 앞에 두고 자꾸 미적대는 킬리언을 재촉해 르벨마리 거리로 향하며 평소 그에게 자주 보여 주지 않았던 미소와 애교를 잔뜩 선사했다.

“저것 좀 봐요, 킬리언! 너무 귀여워요!”

“귀엽네. 사 줄까?”

킬리언은 이런 데서 남주인 클리프와 차이가 났다.

클리프는 ‘사 줄까?’ 하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중에 리제가 가리킨 것들을 전부 리제의 방에 선물로 보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 킬리언의 태도도 나쁘지는 않았다. 분명 에디트에게는 이런 식으로 선물을 사 준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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