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선율이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갔다.
버진로드 양쪽으로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하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식장 전체가 진중한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격식만 따지자면 공작가의 결혼식답게 완벽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결혼식다운 기쁨이나 부산스러움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장례식이라고 하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신랑 쪽의 하객도, 신부 쪽의 하객도 다들 어두운 표정이었다.
‘표정들 좀 펴요. 댁들이 아무리 불편한들 나만 하겠어?’
나는 이제 이 얼어붙은 식장 한가운데를 걸어가 날 죽일 남자 옆에 서야 한다고.
“이제 신부, 에디트 리겔호프 입장하시오.”
결혼식 주례를 하러 온 건지, 장례식 미사를 보러 온 건지 모를 신관이 암울한 목소리로 내 입장을 명했다.
어제 종일 연습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봤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넘어지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기를 쓰고 연습한 대로, 발끝으로 드레스 자락을 툭툭 차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내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치맛자락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슴이…… 아니, 내 가슴이 크고 아름다운 건 알겠는데, 가슴 노출이 너무 심하다.
오늘 처음 입어보고 가슴을 가리는 뭔가가 없어진 줄 알았을 정도였다.
‘아무리 관능적인 드레스가 좋다고 하더라도, 결혼식 날 이런 드레스는 좀 아니지 않아?’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듯, 날 쳐다보는 시선들은 명백히 부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었다.
혐오, 경멸, 무시, 혹은 욕정.
나는 호의 부스러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내 남편이자 내 목을 치게 될 남자 옆으로 걸어갔다.
물론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내가 아마 그에게 내려진 저주나 형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후우, 어쨌든 넘어지지는 않았어. 1단계 클리어.’
나는 무뚝뚝한 신관을 향해 살짝 무릎을 굽혀 예를 표하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관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축복의 기도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이 찬미하옵나이다, 창조주 헤르샨이시여. 오늘 창조주의 품 안에서 행복하고 따스한 가정을 이룰 아름다운 두 남녀를 축복하나이다…….”
음…… 이 남자와는 절대로 행복하거나 따스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날 혐오하는 남자가 내 목을 치게 될 거라는 걸 아는 이 상황에서는, ‘행복하거나 따스한’도, ‘미래’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지극히 불투명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상황을 거부하거나 미리 피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눈을 떠 보니 일주일 뒤에 결혼할 새 신부에게 빙의해 있었으니까.
그 과정도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 * *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그날이 그랬다.
하나씩만 덤볐다면 적당히 얻어맞거나 피하거나 달래며 넘겼을 일들이, 그날따라 한꺼번에 내게 달려들었다.
“수나 씨! 내가 이거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 이건 영은 선배님이…….”
“죄송해요, 과장님. 수나 씨가 아직도 엑셀 작업이 서툴더라고요. 제가 다시 수정해 놓겠습니다.”
고작 1년 먼저 들어왔다고 온갖 선배 갑질은 다 하던 안영은이 자기 실수를 내게 뒤집어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