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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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8월 2일

오늘 웬일로 킬리언 도련님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도련님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앉아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에디트 아가씨에겐 종종 있는 일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기억을 정정해 드려야 하나 싶었지만 킬리언 도련님의 눈빛이 흉흉해서 관뒀다.

에디트 아가씨는 킬리언 도련님이 있든 말든 오늘도 집중해서 빠르게 일을 해주셨다. 정말 볼 때마다 탐나는 인재다.

그런데 도련님이 그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나한테 직원을 한 명 뽑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하셨다.

감사한 말씀이기는 했지만 내가 여태 직원을 안 뽑으려고 안 뽑은 게 아니다.

늘 뽑았지만 다들 반년을 못 견디고 도망친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트 아가씨는 정말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아가씨는 종종 반복되는 근신령만 아니라면 내가 이제껏 본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이해력이 좋고 손이 빠르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에디트 아가씨가 도와주고 계시니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킬리언 도련님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마 킬리언 도련님은 에디트 아가씨의 관심을 사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그럴 거면 에디트 아가씨께 말이나 곱게 하시든가.

척 봐도 에디트 아가씨는 눈치가 먼지 수준으로 없는데 그렇게 꼬아 말한다고 알아듣겠는가.

두 분의 앞날이 참으로 험난해 보였다.

* * *

킬리언은 매일 출근하듯 리넌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와서 딱히 하는 일은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나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인 듯했다.

그런데 감시를 하려거든 숨어서 해야지, 이렇게 대놓고 보고 있으면 어떡해? 감시의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다.

어쨌든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꿋꿋이 성실한 직원을 연기했다.

아니지, 이건 연기가 아니다.

내 영혼은 힐링 게임에서도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돈을 번다는 한반도 직장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다 더하면 총 3,568,478세나예요. 하지만 실제 내역서에는 3,568,487세나로 적혀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쪽에서 마지막 두 자리의 숫자를 바꿔 적은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9세나가 어디서 사라졌나 했는데,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이건 개수가 틀렸더라고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런 소소한 계산이 틀리면 나중에 곤란해질 것 같아서요.”

“맞습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아가씨께서는 상당히 꼼꼼하시군요. 덕분에 오류투성이이던 서류가 상당히 정리되었습니다.”

“리넌이 잘 가르쳐 준 덕분이죠, 뭐.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아가씨야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오늘도 계산이 틀린 서류를 찾아 정정해 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이제 끝난 겁니까?”

“어? 킬리언. 아직도 거기 있었어요?”

일하느라 킬리언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내 말이 좀 기분 나빴던지 킬리언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성실하고 끈기 있다는 리넌의 평가가 지나치게 정확하군요.”

“어? 그, 그래요? 고마워요.”

“……칭찬 아니었는데요.”

“네? 성실하고 끈기 있다는 게 칭찬이 아니라고요?”

“하아…… 아닙니다. 저도 이제 일어날 생각이니, 방까지 모셔다 드리죠.”

이건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다.

킬리언은 내가 책상 위를 다 정리하기도 전에 내 손목을 붙들고 리넌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책상 다 못 치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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