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플래시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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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번 일마저 어그러진다면 난…….’

클리프와 결혼한 지 4년째 되는 해의 어느 날.

리제는 미쳐 가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원작의 리제가 황실의 총애를 거머쥐는 원작의 마지막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이날을.

“어디 가?”

“내가 어딜 가든지, 신경 안 쓰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는 기계적으로 묻는 클리프의 모습도 지긋지긋했다. 그에게는 혼전 계약서에 적은 의무만 남은 것 같았다.

리제는 건조하게 바라보는 클리프의 얼굴을 지우듯 마차 문을 닫고 출발을 명했다.

‘건국제가 있기 한 달 전, 수도 외곽의 노예 경매장…….’

원작의 리제는 건국제를 맞아 공작 내외에게 선물을 하려다가 가게를 착각해 노예 경매장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서 황실의 잃어버린 핏줄을 찾는다.

물론 알고서 데려온 것은 아니다.

그저 자존심 꼿꼿해 보이는 소년이 험한 대우를 받는 게 불쌍해 충동적으로 데려왔을 뿐.

소년은 자신의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의외로 귀족 예법에 해박하고 똑똑하다.

그런 소년이 기특해진 리제는 그를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두는데, 마침 저택에 놀러 온 카트린 황녀가 그 소년을 보고 깜짝 놀란다.

‘황제의 조카가 납치당했다는 사실은 극비였으니까.’

제 사촌을 한눈에 알아본 카트린은 리제와 소년을 함께 궁으로 초대하고, 카트린이 미리 부른 소년의 친모는 그 자리에서 잃어버렸던 아들과 감동의 재회를 한다.

잃어버린 황실의 핏줄을 찾아 준 리제는 단번에 황실의 총애를 받게 되고, 그런 그녀는 클리프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게 원작의 결말이었다.

‘더는 잃기 싫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아직 더운 기운이 남은 날씨인데도 리제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지난 몇 년간 잃은 것들을 떠올리면 에디트를 갈아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공작 내외의 애정은 완전히 잃은 다음에야 그게 얼마나 따뜻하고 안락한 품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지겹다고 여겼던 클리프의 사랑은 다른 그 누구의 사랑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리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는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리제의 겉모습과 ‘루드윅 공작 부인’이라는 위치를 탐했다.

다른 이들의 사랑 고백을 들으면 들을수록 리제의 마음은 공허해져만 갔다.

‘황실의 총애를 얻는다면 다들 날 다시 사랑해 줄 거야. 그래야만 해.’

리제는 불안감으로 잘게 떨리는 손을 꼭 쥐며 수도의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후드 망토를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뒤 입장한 노예 경매장에서 그 소년의 차례를 기다렸다.

리제의 삶을 여러 번 살면서 몇 번을 반복한 일인데도 마치 처음인 것처럼 긴장됐다.

‘마지막 경매다. 이번에 나타나겠지?’

리제는 입찰 판을 손에 꼭 쥐며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 오늘의 마지막 경매! 이번에는 보기 드문 미소년입니다! 나이는 열셋! 제 노예 경매 경력 15년에 이렇게나 예쁘장한 녀석은 처음입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사내의 멘트는 원작과 똑같았다.

그러나 다급하게 입찰 판을 올리려던 리제의 손은 뻣뻣하게 굳었다.

‘뭐, 뭐야!’

무대에 올라온 소년은 원작과 똑같이 하얀 피부에 눈부신 금발을 지닌 미소년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조카와는 다른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이를 앙다물고 있던 소년이 아닌, 두려움에 벌벌 떨며 주변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소년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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