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맞춘 드레스에 이 루비 목걸이만 하고 가려고요.”“그것만 한다고요? 당신이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야 잘 알겠습니다만, 분명 누군가는 시비를 걸 텐데요.”
“내 남편의 심장 한 조각을 늘 목에 걸고 다닌다고 하죠, 뭐. 그것보다 더 귀한 보물이 어딨겠어요?”
킬리언이 얼굴이 금세 벌게졌다.
“나,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흐흥, 있는 대로 기분 좋은 티를 내면서 그런 말씀 하시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요.
킬리언은 시선을 빙빙 돌리다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영지에 내려가기 전에 언제 한번 보석상을 부르죠. 그때는…… 원하는 건 전부 사도 됩니다.”
내가 킬리언에게 원하는 건 보석 이전에 내 모가지를 안전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지만 지금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아니, 상당히 좋았던 하루였다.
* * *
“리제!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녀 전하!”
리제는 건국제 준비로 한창인 황궁의 볕 좋은 응접실에서 황녀 카트린 이베리아를 마주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클리프를 짝사랑했던 카트린은 클리프의 사랑을 받는 리제를 질투해 한때는 해코지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리제의 티 없이 순수하고 착한 성격에 감화되어, 이제는 리제의 사랑을 받는 클리프를 질투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클리프, 그 멍청이는 네게 잘해주고?”
“루드윅 공작가의 모든 분들이 제게 잘해주세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공작가에 와서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아요.”
“넌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아도 돼. 정 싫으면 내 시녀로 황궁에 와서 살아도 된다니까.”
하지만 리제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루드윅 공작 각하와 부인의 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아서요. 제게는 그분들이야말로 부모님이세요.”
“음…… 그건 이길 수가 없네. 루드윅 공작 부처가 널 구해낸 거나 다름없으니까.”
리제는 카트린이 이제까지 봐온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갖고 그녀를 모욕했던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준 사람.
리제가 아니었으면 카트린은 아직도 황궁의 문제아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천사를 못 알아보고 괴롭히는 것들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다짐을 실천할 시작점은 싱클레어 백작가였다.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려 사생아를 만들어놓고는 호적에만 올린 뒤 무관심했던 싱클레어 백작이나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리제를 못살게 군 백작 부인과 그 자식들을, 카트린은 언제고 반드시 혼쭐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을 올해의 건국제로 계획한 상태였다.
“요새 싱클레어가의 떨거지들 동태는 좀 어때?”
“떠, 떨거지라뇨.”
리제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미안 오빠는 후계자 수업을 겸해 아버지의 일을 돕는 것 같고, 레일라 언니는…….”
“누가 그런 근황 물어봤어? 너한테 이상한 짓 안 하냐고.”
“아, 아니에요! 그런 일 없…….”
“……리제?”
손사래 치며 부정하던 리제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며 말끝을 흐리자 카트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무슨 일 있었구나. 그렇지?”
“아, 그, 그게……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지만 모른 척해 줄 카트린이 아니었다.
“리제. 무슨 일이야? 나 이렇게 걱정하게 만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