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조슬린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다면, 이 방법을 알고 쓸 수 있는 건 기껏 해봐야 에디트와 우리 가족들뿐이겠구나.”
“네. 아마도요. 그런데…… 왜 그걸 물어보신 건지 여쭤봐도…… 되나요?”
리제는 겁먹은 듯한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만 물러가 보거라.”
나를 향한 냉랭한 눈빛과는 달리, 리제에게 보내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리제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물러가 보라는 공작의 명을 거스를 수 없어 작게 묵례하고는 방을 나갔다.
“참 이상한 일이구나, 에디트.”
한숨이 나왔다. 요새 한숨만 느는 것 같아 큰일이다.
“표라는 건 누구나 한 번만 봐도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하아…… 아닙니다. 됐습니다. 어차피 범인이 저라고 결론 내리신 것 같은데요, 뭘.”
“끝까지 아니라는 거구나.”
“제가 평소 그리던 것과 전혀 다른 표, 어긋난 필체를 보여 드렸는데도 리제의 말 한마디에 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는걸요. 난 또 얼마나 대단한 증언을 하나 했더니…….”
솔직히 실망이었다.
원작에서 리제가 어떤 식으로 에디트를 범인으로 몰아넣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라면 뭔가 더 그럴듯한 추리나 증거를 들이밀 줄 알았다.
‘내가 내민 증거 때문에 리제에게 허락된 개연성이 줄어든 건가.’
참…… 입맛이 씁쓸했다.
이따위 개연성으로 소설 쓴다고 하면 독자들한테 욕을 엄청 얻어먹을 텐데, 그래도 원작의 흐름은 여전히 에디트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공작은 ‘에디트와 우리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루드윅이라는 성을 달고 있는데, 공작은 저번부터 의도적인가 싶을 정도로 나를 배제하고 있었다.
착잡해하고 있는데 공작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저런 증언으로는 확신하기가 어렵지. 어쨌든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네게 내린 근신령도 철회하마.”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인정하겠다는 소리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결백하다는 걸 믿는다는 소리도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에디트가 범인이라는 게 명확히 밝혀졌기에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가 이렇게 흐지부지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이 상황이 내게 이로운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잠깐!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내가 잠깐 신경 쓰지 못한 사이, 킬리언이 내 일기장을 읽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서 일기장을 빼앗아 들었다.
“남의 일기장을 함부로 읽다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남이 보면 안 될 정보라도 적어놨습니까?”
“일기장에 정보를 적어놔서 못 보여주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내 내밀한 이야기니까 그렇죠! 정말 다들…… 저한테 예의를 지켜주실 마음이 조금도 없군요!”
나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공작의 집무실을 나왔다.
그러자 킬리언이 뒤따라 나와 나를 붙들었다.
물론 사과 따위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알아요!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시겠죠!”
“그동안 리겔호프가에서 벌여온 짓들을 생각하면 당신이 의심받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이런 일 정도는 그냥 묻어도 될 만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나와는 상관없어요.”
“상관 있습니다. 당신도 여태 당신 아버지의 음모를 상당 부분 도왔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