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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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더러 거기 갇힌 채 죽으라고, 놔두고 간 거야?’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날 리겔호프가의 일원으로 여겼다면 끌고 가서 내 목도 잘라야 맞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나를 구출했어야 한다.

‘이번 일에 가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살려주고 싶지도 않았다는 건가……?’

포로처럼 묶여 폭행당한 나를 보고도 두고 갔으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날 거기다 방치한 채 몰랐다고 잡아뗀다면 내 죽음에 대해 루드윅가에서 책임질 일도 없을 것이다.

‘킬리언…… 이건, 너도 동의한 일이야?’

원작에서 클리프의 구출 작전은 루드윅 공작과 킬리언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다. 치밀한 계획 끝에 클리프가 가기로 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킬리언도 이 작전을 알고 있을 테고, 내 처분에 관해서도 분명…….’

원작을 떠올리던 나는 연회색 구름이 반쯤 뒤덮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다시 겨울이네…… 킬리언과 결혼할 때도 이쯤이었는데…… 에디트의 등장은 딱 1년이었구나.’

그 1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일들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자꾸 킬리언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너라는 광고판을 제일 잘 써먹은 사람이 바로 킬리언 루드윅이라고.”

소피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킬리언이 내게 잘해준 게 주변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이미 뒷조사를 다 끝냈다던가.

‘남들이 보지 않을 때도 내게 잘해줬던 건, 날 완전히 속이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부정적인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킬리언이 정말 나를 아내로 받아들였다면, 내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클리프가 나를 버리고 갔을 리 없다. 동생의 의지를 무시하는 형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버리고 갔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명확했다.

‘그러니까…… 내가 더는 필요 없다는 거지?’

킬리언의 마음 한 자락을 잡겠다고 아득바득 노력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허탈해졌다.

그러나 허탈감과 절망에 빠져 있어도 인간은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동물이었다.

“어우, 추워.”

여기저기 아픈 몸을 부르르 떨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어쨌든 아직 살아 있잖아?’

엑스트라들에게 친절하기로 한 ‘플랜B’가 결국 내 목숨을 살린 거나 다름없었다.

밧줄을 헐겁게 풀어준 용병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캄캄한 지하 창고에 갇힌 채 굶어 죽든가 얼어 죽었을 것이다.

‘이제야 은행에 맡긴 돈을 쓸 수 있겠구나.’

이렇게 된 거, 루드윅가가 내 금고의 출금을 막기 전에 얼른 돈을 찾아야 했다.

가명을 이용해 금고를 개설하기는 했지만, 루드윅 공작가라면 손쉽게 모든 걸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만약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밧줄을 풀고 도망치라고. 여긴 수도 남부 웰슬리니까, 나가면 무조건 북쪽으로 달려.”

용병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뿌연 구름에 가려진 해와 내 흐릿한 그림자를 보고 대충 북쪽을 정한 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수도 중심부까지 가는 것조차도 지금은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그 일에만 집중하자고 단단히 다짐했다.

* * *

루드윅 공작가와 리겔호프 백작가의 영지전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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