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이 넘치는 라이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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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8월 초, 나는 ‘이번 생도 여기서 끝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를 낳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 골반이 넓은 에디트의 체형 덕분에 수월하게(내 느낌으로는 절대 수월하지 않았지만) 낳을 수 있었다.

참고로 말하면 그날, 킬리언은 또 울었다.

“수고했습니다, 에디트. 진짜 수고 많았고…… 고마워요. 고마워, 에디트. 사랑해.”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도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울보네…….”

킬리언은 그 말에 울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토록 행복해 보이는 미소는 또 처음이었다.

내가 그에게 또 더 큰 행복을 선사한 모양이다.

태어난 아이는 사내아이였는데, 우리는 미리 골라 둔 이름 후보 중에서 아이와 가장 어울리는 ‘에르딘’을 골라 아이의 이름으로 붙여 주었다.

에르딘은 킬리언의 까만 머리칼과 내 옅은 갈색 눈동자를 물려받은, 정말 예쁜 아이였다.

“루드윅가의 미모는 어딜 가지 않네요. 어쩜 이렇게 예쁘지?”

“당신을 닮아 예쁜 겁니다. 눈매가 완전히 당신을 빼다 박았다니까.”

“하지만 요기 요 입술은 완전히 당신인걸요? 어머, 어머! 입술 오물거리는 것 좀 봐.”

“배고픈 건가?”

“아까 맘마는 양껏 먹었어요. 꿈에서 젖을 빠나 봐요.”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에르딘을 구경했다.

사지를 가누지도 못해 온몸을 꽁꽁 싸매 놓은 아기였는데, 그 아기가 입술을 움직인다고, 웃는다고, 뺨에 보조개가 팰 만큼 하품을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전생에는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아이는커녕 결혼 생각도 못 했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내 행복이 드디어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이 충만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를 봐줄 유모가 있어서 그런 거다.

‘독박 육아라면 두 손, 두 발 다 들었겠지.’

백일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엄마고 아빠고 잠을 거의 못 잔다는 헬 육아가 아니었으니까.

유모가 있는 덕분에 나는 잠도 푹 자고, 보양식도 잘 먹어 가면서 몸을 추슬렀다.

에르딘은 날 입덧도 시키지 않고 조용히 큰 아이라 그런지, 태어난 뒤로도 다른 아기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었다.

에르딘이 클수록 나는 아기가 킬리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킬리언은 에르딘을 볼 때마다 날 닮았다고 하니 웃긴 노릇이었다.

“두 분을 반반 빼닮으신 거지요. 이렇게 보면 백작님을 닮으시기도 했고, 저렇게 보면 마님을 닮으시기도 한걸요.”

에르딘이 태어난 이래 나나 유모만큼이나 에르딘에게 애정을 보이는 안나가 오늘도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안나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책임감을 한꺼번에 느꼈다.

“안나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 없어?”

안나도 벌써 스물여섯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라면 아직 한창 젊음을 즐길 나이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노쳐녀 딱지가 붙을 나이였다.

“결혼은 혼자 하나요? 그리고 저는 지금 이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님.”

안나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행복해 보였지만, 온종일 내 수발을 들고 난 안나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를 맞이하는 게 적막뿐일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독신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 자체가 나 혼자 안나에게 제멋대로 품은 동정심일 수도 있었고.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안나가 정말로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나 때문에 젊음을 다 흘려보낸 다음에야 외로움을 느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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