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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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각하. 혹시…… 저와 리제가 외출할 것을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적 있으신가요?”

“내가 그런 말을 누구한테 하겠느냐?”

하긴, 저 호랑이 같은 공작이 주변 사람을 붙들고 며느리들 얘기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밀레인 서점>으로 직접 데리고 간 건 리제였으니…… 아니, 아니지. 두 사람이 공범일 수도 있어.’

나는 끝까지 공작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그러고는 나보다 더 파리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리제를 보러 갔다.

“에, 에디트!”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리제가 죄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 옆에는 미간에 얼핏 힘이 들어가 보이는 클리프가 버티고 서 있었다.

“괜찮아요, 리제?”

“저, 저는 괜찮아요. 저 때문에 에디트가…… 흐흑…… 미안해요. 정말 저는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요.”

“누가 그런 사고를 예상했겠어요? 안 그래요? 좀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요.”

나는 식은땀에 젖은 리제의 이마를 옆에 있는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생긋 웃었다.

정말 누가 보면 죽을 뻔한 사람이 리제인 줄 알겠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리제는 어딘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내가 죽을 뻔했던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하긴, 같이 놀러 나갔던 사람이 스토커한테 죽을 뻔했다면 보통은 놀라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점은 남았다.

“리제. 혹시 저랑 르벨마리 거리에 가기로 한 건, 리제가 미리 계획했던 일인가요?”

“아니요! 아니에요. 공작 각하께서 에디트와 쇼핑을 나갔다 오라고 하셨을 때, 그냥 떠오른 생각이었어요. 제가 그나마 아는 곳이 르벨마리 거리뿐이라서요.”

“그래요?”

날 바라보는 클리프의 시선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입매는 아까부터 매끈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동자는 살얼음이 낀 것 같다.

“주변에 알린 적 없는 얘기란 말이죠?”

“물론이에요.”

“알았어요. 저도 다친 곳 없고,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은 난동을 피우다가 자살했다니까…… 리제도 얼른 털고 일어나세요.”

나는 리제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제는 이게 끝이냐는 듯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에디트…… 정말…… 괜찮아요?”

“으음…… 죽을 뻔했던 공포가 금방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킬리언이 곁에 있으니까……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흐흑…… 미안해요.”

“리제. 울지 말아요. 리제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도 아닌데 이렇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뚝!”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만약 리제가 범인이라면, 혹은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을 원작자가 보고 있다면 그 안에 든 의미를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우는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일어나려는데 클리프는 예의상의 미소조차 지운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리제가 일부러 당신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투로군요.”

“제가 언제요?”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랬습니다. 고작 함께 서점에 갔다가 당신을 찾지 못하고 먼저 나온 일, 그 작은 일 때문에 죄책감에 떨고 있는 리제를 보면서도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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