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네…….”
두 사람 사이에 한동안 적막이 감돌았다.
킬리언도 리제가 제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말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리제는 차분하면서도 어딘지 슬픈 얼굴이었다.
“아는 척할 수 없었어요. 저는 사생아고…… 킬리언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킬리언은 멍해졌다.
‘리제도…… 날 좋아하고 있었다는 건가……?’
이 말이 사실이라면 킬리언은 너무나 억울한 결혼을 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넌…… 클리프와…….”
“클리프 님이 저를 예뻐해 주시는 건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좀 무서울 정도이긴 하지만…….”
“하…….”
킬리언은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는 것 같아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리제가 보내는 사인이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순간순간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났다.
“제가 사생아가 아니었더라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슬픔으로 젖은 듯한 질문에 킬리언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저 몸을 굳혔다.
정말로, 리제가 사생아가 아니었고 자격지심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녀가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수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당신이 영지전에 나가 다칠까 봐 걱정돼요.”
“전쟁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하지만 당신이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저는…….”
눈물을 아롱거리는 눈망울이 애틋했다.
그런데 그 순간, 킬리언의 머릿속에는 에디트가 떠올랐다.
“이 나이에 벌써 과부 되기는 싫거든요.”
저를 걱정한다고 하면서도 짓궂은 이유를 갖다 붙이던 에디트.
하지만 킬리언은 리제의 눈물 어린 염려보다 장난기 섞인 에디트의 표현이 더 와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리제가 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혼자 착각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은 더 많았다.
저에게 짓는 것보다 클리프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가 더 환했고, 제가 없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훨씬 더 친밀했으며, 셋이 있는 자리에서도 가끔은 소외감을 느꼈다.
‘그런데 나를 사랑했다고? 그건 좀 이상한데…….’
그러다 킬리언은 자기가 또 지레짐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제는 저에게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또 멍청한 착각을 할 뻔했군. 아니, 리제가 이런 착각을 의도한 건가……?’
킬리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리제가 곁으로 다가온 순간에는 냉정한 킬리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리제……?”
“떠나기 전에, 한 번만 입 맞춰 주면 안 돼요?”
더는 부정할 길 없는 유혹이었다.
촉촉한 눈망울도, 드러난 어깨도, 킬리언의 팔뚝 위에 얹어진 손도, 리제의 모든 게 킬리언을 유혹하고 있었다.
지난 5년간 갈망해 왔던 햇살의 파편이, 처음으로 그를 향해 오롯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를 원하고 있었다.
“리제…….”
만약 반년만 더 일찍 리제가 다가왔더라면, 킬리언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리제에게 입 맞추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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