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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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에디트는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로 사건을 분석했다.

리제의 방이 비었던 것은 킬리언과 클리프도 민감하게 여기고 있던 부분이었다.

에디트에게는 일부러 빈 시간이 짧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꽤 긴 시간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몰랐을 에디트가 수예 상인에 이어 곧바로 그 부분을 짚으며 의심하는 것을 보고 킬리언은 에디트가 범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루드윅가 사람들이 생각하던 대로 에디트가 멍청한 독살 미수범이었다면, 자신이 범인으로 몰렸을 때 허둥대며 변명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디트는 자신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 보듯 냉정하게 굴었고,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연속적으로 일을 벌일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에디트의 추리 역시 그럴듯했다.

싱클레어 백작가의 멍청한 떨거지들이 이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들어맞았다.

그들은 리제와 리겔호프 가문 둘 다 미워했으니까.

만약 에디트로 인해 리제가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싱클레어가에서는 리제의 안위를 핑계로 루드윅가에서 뭔가를 뜯어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에디트는 그동안 아무 죄도 없으면서 의심받고 모욕당했다는 말이야.’

에디트는 여태 지속적으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가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되곤 했다.

만약 그게 싱클레어가의 계략이었다면……?

그 가정만으로도 킬리언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서 그 쉬운 가정을 더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써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네기는 일렀다.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었으니까.

대신 그녀에게 자꾸 시비를 걸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에디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꾸 그녀의 속을 긁고 도발해서 뻔뻔하게 맞부딪쳐 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제가 그 정도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자존심 상하게.”

“난 내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는데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내 기분이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당신과 공작 각하를 믿어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 그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도 못 느낄 거라고 믿는 거지만.”

무례한 도발에 화내지 않고 도도하게 대응하는 에디트는, 솔직히 말하자면 마른침이 넘어갈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런 여자였던가?’

소문으로만 알아 오던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인정한다. 오만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야 얼굴을 마주했던 에디트는, 그가 알던 소문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그 육감적이고 유혹적인 외모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나, 에디트 루드윅이에요. 내가 고작 남자의 사랑 따위를 바라서 다른 여자를 질투할 것 같아요? 착각하지 말아요.”

에디트가 저를 비웃듯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을 때, 킬리언은 자신이 알던 ‘소문’보다 훨씬 더 아찔한 그녀에게 입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 더 참았다가는 에디트를 바닥에 쓰러트리고 짐승처럼 달라붙었을지도 모른다.

그 위기는 ‘그냥, 하고 싶어서.’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얼버무렸지만, 자신의 한심한 욕정은 사라진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린 것뿐이었다.

오늘부터 에디트의 근신이 해제됐다는 얘길 들은 그는 에디트가 일하고 있을 시간에 맞춰 리넌의 사무실 앞을 서성댔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들어가서 작년 라이젠 영지의 세금 수령 내역을 좀 보자고 하는 거야. 그 정도면 자연스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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