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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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꼴이 되었으면서, 여태 한마디도 없었어. 한마디도!’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던 잔인한 폭행의 증거가 그의 가슴에 분노의 화마를 키웠다.

자신이 그녀에게 미더운 남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보호자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저는 그조차도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녀를 지켜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터질 것 같은 속을 간신히 다스리고 다시 에디트의 방으로 돌아와 보니 그사이에 에디트는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눈썹과 뺨을 적신 눈물은 아직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에디트…….”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에디트는 긴장이라도 풀린 것처럼 깊게 잠들어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뭘 숨기고 있는 겁니까?”

저와 루드윅가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다 받으면서도 입을 꾹 다문 채 버티기만 하는, 에디트.

자신이 그녀의 진실에 닿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지, 킬리언은 답답한 속을 녹여낸 한숨을 길게 뱉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약을 바르는 손길만은 한없이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간지러운지 움찔거리며 작게 신음을 흘리는 에디트 때문에 중간중간 인내심을 끌어모아야 했지만, 킬리언은 그녀의 몸에 약을 바르고 새벽 동이 터올 때까지 그녀를 안아주었다.

저인 줄도 모르면서 온기를 찾아 파고드는 에디트의 모습을 보며 킬리언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건 내 쪽이었군. 이렇게 흔들려서 뭘 어쩌자고.’

킬리언은 에디트의 뺨에 입 맞추면서도 저 자신이 미쳤다고 여겼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속내를 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이렇게 휘둘릴 리가.

* * *

아침에 일어나니 왠지 기분이 개운했다.

간밤에 굉장히 포근한 느낌이 가득한 꿈을 꾼 데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쭉 잠을 잔 덕분인 것 같았다.

포근한 그 꿈에서 누군가가 내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깨질 듯 약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그 손에 몸을 맡기고, 그 온기에 내 마음을 맡기고 싶었다.

‘감각으로만 가득한 꿈이라니, 진짜 신기하네.’

뭔가 보인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 꿈은 처음 꿔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어젯밤의 우울했던 기분이 싹 날아가서,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보들보들해야 할 등의 느낌이 이상했다.

“응?”

끈적거리는 보디로션을 바른 것처럼 등에 침의가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어? 이게 뭐지?”

어깨 너머로 팔을 뻗어 만져보니 확실히 등에 뭔가가 발려 있었다.

그리고 ‘멍이 든 부위’에 발려 있는 것으로 나는 그게 연고라는 것을 알아챘다.

‘킬리언……!’

이런 일을 할 사람은 킬리언뿐이었다.

내 몸에 멍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소피아와 킬리언뿐이었고, 소피아는 나한테 약을 발라줄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그 꿈도 설마…… 킬리언……?’

킬리언이 내게 약을 발라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었다.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킬리언이니, 여자가 시커먼 멍이 들 정도로 다친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싫어하는 여자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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