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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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후 집무실에 들르라는 주인님의 분부가 있었습니다.”

“예……?”

“서두르세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여자에 의해 얼굴을 씻고 머리를 빗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그리고 단장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선 나는 그제야 일이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 누구세요?’

거울에 비친 나의 외모는 너무나 낯설었다.

붉은 기 도는 갈색 머리칼에 옅은 갈색처럼 보이는 눈동자, 하얀 피부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닌 서양인이었다.

예쁘긴 한데 약간 앙칼져 보인다. 환불하러 갈 때 데려가면 좋을 법한 인상이랄까.

그리고 그사이 내 머릿속에는 누군가의 기억이 천천히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디트 리겔호프라는, 결혼을 일주일 앞둔 스물두 살 귀족 아가씨의 기억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인간의 머릿속에 ‘귀족’ 아가씨의 기억이 생긴 것도 이상했지만,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에디트…… 에디트 리겔호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더라? 아, 잠깐! 설마……?’

기억났다. 그건 엊그제 완결까지 읽은 로판의 악녀 이름이었다.

사이다 전개를 지향하는, <집착은 사절합니다>라는 제목의 로판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로판의 악녀에 빙의했다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주인공도 아니고 악녀라니! 아니, 그 이전에 빙의라니!

“방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님께 다시 한번 방문 허락을 받고 오겠습니다.”

소피아라는 하녀가 무뚝뚝하게 말한 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나갔다.

나는 무섭게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재빨리 그 소설의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이 틈에 얼른 정신을 차려야 했으니까.

‘주인공은 리제 싱클레어였지? 남주는 클리프 루드윅이었고.’

당황하긴 했지만 다행히 머리는 제대로 돌아갔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라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리제 싱클레어는 봄의 여신처럼 밝고 천진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그러나 모든 주인공들에게는 핸디캡이 존재하는 법.

그녀는 싱클레어 백작이 하녀를 건드려 낳은 사생아였다.

백작은 아름답고 영민한 리제를 언젠가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호적에 올렸지만, 싱클레어가 사람들은 리제를 못살게 군다.

집안의 핍박이 심해지던 중, 싱클레어가에 잠깐 머무르게 된 루드윅 공작 부부의 눈에 들어 루드윅 공작가로 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남주인 클리프와 서브 남주인 킬리언을 만나게 되는 거지.’

클리프와 킬리언은 공작가의 두 아들인데,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형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리제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리제가 원하는 건 갖다 바치고, 리제를 위협하는 건 리제 모르게 처리하면서…….

그들이 바로 제목에서 사절하겠다는 그 ‘집착’의 주체들이었다.

그러나 눈치 없고 천성이 밝은 모든 여주들이 그렇듯, 그녀는 두 남자의 ‘조금’ 도를 지나친 사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똑똑하게 해결해 나간다.

결국 그녀는 공작가의 장남인 클리프와 결혼해 공작 부인이 되고, 그녀를 핍박하던 싱클레어 백작가 사람들은 땅을 치며 후회한다는…… 흔한 소재지만 그만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거기서 에디트 리겔호프는 리제의 수많은 ‘적’ 중 하나였다.

‘3권인가 4권에서 서브 남주랑 정략 결혼한 여자였지? 그럼 지금은 그 서브 남주와의 결혼식이 일주일 남았다는 거야?’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