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고마워요, 킬리언.”
“원하시면 팔았던 것들을 다시 매입하겠습니다.”
“아니에요! 판 것들은 정말 필요 없는 물건들이거든요.”
사줄 거면 다른 걸로 사주든가 돈으로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까지 꺼내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팔기 전에 제게 언질이라도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킬리언은 내가 귀족의 자존심도 팽개칠 정도로 현금이 모자랐다고 여겼는지 상당히 속상한 얼굴이었다.
괜히 위로해 주고 싶게 말이다.
“어차피 나중에 당신이랑 영지에 내려갈 때 다 처분했어야 할 물건들이에요. 괜히 짐 되잖아요.”
“영지……?”
엇, 내가 괜한 말을 했나?
하긴, 킬리언으로서는 사랑하는 리제를 남겨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 일인데 내가 너무 무감각했는지 모른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게…….”
주제넘었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누가 널 데려가겠다고 했냐며 면박을 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마음이 아플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오히려 제가 너무 태평했군요. 슬슬 영지로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도 정신을 빼놓고 지냈던 모양입니다.”
“그, 그럴 리가요.”
“짐 정리 개념으로 물건을 처분하셨다니 다행입니다만, 사실은 여기서 사가야 할 게 훨씬 많습니다. 라이젠 영지 자체는 나쁘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가 지낼 성에는 모자란 물품이 많거든요.”
어?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그런데 왜 뺨까지 붉히고 난리지? 영지를 하사받는 게 설레는 일이라 그런가?
“가구도 죄다 투박하고, 성안을 장식하는 물건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 근처에는 사치품을 제작하는 곳도 없으니 여기서 다 사가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가구들은 미리 주문을 해놓는 게 낫겠군요. 다 만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있는 거 쓰면 되…….”
“아니, 그릇이나 촛대부터도 다 주문해야겠군요. 안주인인 당신의 취향으로 다 바꿔야 할 테니까.”
있는 거 쓰면 된다고 말하려던 나는 ‘안주인’이라는 단어에 감격해서 그만 말문이 막혔다.
나를 내치고 싶어 안달하는 눈으로 쳐다보던 킬리언 루드윅이, ‘내 아내’라는 단어를 거쳐 드디어 나를 ‘안주인’이라고 했다! 이렇게 감개무량할 수가!
지난 몇 달간의 고생이 눈앞을 스치고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감동은 그다지 오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의 서민 감각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기 때문이다.
감개무량한 건 감개무량한 거고, 돈이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쓸 수 있는 건 그냥 쓰는 쪽으로 하고 싶은데요.”
“다 투박할 겁니다.”
“제대로 기능만 하면 돼요.”
“그럴 거면 평민 농가의 가구라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불편하지만 않으면요.”
킬리언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돈 아깝잖아요.”
다시 그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최대한 빨리 당신 앞으로 내탕금을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내가 돈 아깝다는 소리를 한 게 내 내탕금을 잊은 그를 비꼰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