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쓰시던 향수와 루주가 거의 다 떨어졌는데 향장(향수를 만드는 장인)과 화장품 상인을 부를까요?”“오, 그래! 좋아!”
역시 안나는 스토리 진행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나도 명품 화장품 한번 써볼 테다!’
나는 전생에 니치 향수나 고가의 수입 화장품을 쓰던 회사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비슷하게라도 보이려고 애쓰던 나는, 남들 눈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화장을 고치지 않았다.
로드숍 화장품인 것은 부끄럽지 않았지만, 전사된 글씨나 스티커가 다 벗겨진 콤팩트를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박박 긁어 쓰고 있던 건 좀 부끄러워서.
‘립스틱도 화장실 변기 칸에 숨어서 바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어. 뭐가 그리 부끄러웠을까.’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런 데서 들킬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자존감 높은 사람은 오히려 ‘내가 이렇게 알뜰하다.’라며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안나가 불러올 사람들을 기다렸다.
안나는 향수 장인부터 불러왔다.
그는 내가 전에 쓰던 향수의 향을 세심하게 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쉴리 장미를 쓴 최고급 장미 향수군요. 이번에도 이대로 만들어 드릴까요?”
“장미 향수도 종류가 여러 가진가?”
“물론이죠. 보통 많이들 쓰시는 종류는 티타니아 장미를 쓴 향수입니다. 진하고 묵직하며 장미 향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향이죠. 하지만 젊은 분들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있습니다.”
“그, 그건 얼만데?”
“비교적 저렴하죠. 작은 병 하나가 2만 세나 정도니까요.”
응? 잠깐만. 2만 세나면, 20만 원이란 소리 아니야?
저 작은 병 정도면 50ml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게 20만 원이라고?
내 한 달 교통비, 통신비, 공과금을 합친 돈이잖아!
“하, 하하, 그, 그러네…… 다른 건 어떤데?”
“젊은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장미 종류가 애쉴리 장미입니다. 옅은 풀 향이 어우러진, 가볍고 산뜻한 장미 향이죠. 아가씨께서 쓰시던 것은 애쉴리 장미와 야생 산딸기의 한 종류, 그리고 용연향이 섞인 아주 고급 향수입니다.”
설명만 들어도 비쌀 것 같다.
“이건 얼마쯤 하는데?”
“섞는 비율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습니다만, 기존에 쓰시던 향수와 비슷하게 만든다면 아마…… 작은 병 하나에 5만에서 7만 세나 정도일 겁니다.”
네? 가격이 왜 갑자기 두세 배나 뛰나요?
50만 원이면 전생의 내 한 달 식비를 훨씬 넘는 돈인데…….
“최고급은 테시스 장미나 나타니엘 장미를 쓰는 향수죠. 작은 병에 10만 세나가 넘으니까요.”
그러니까, 50ml짜리 향수병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내가 원과 세나의 환율을 잘못 계산하고 있는 건가? 왜 이렇게 비싸?
내가 쩍 벌어지려는 입을 단속하느라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데 향장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나타니엘 장미 쪽으로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애쉴리 장미보다는 조금 더 깊은 향기가 납니다만.”
“아, 아, 아니야! 그, 원래 쓰던 걸로 할게. 갑자기 향이 바뀌는 것도 싫고…….”
“하하하. 하긴, 아직은 가볍고 청량한 향기 쪽이 마음에 드실 나이죠. 그럼 전에 쓰시던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때 옆에서 안나가 조언했다.
“애쉴리 장미에 나타니엘 장미를 조금만 섞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