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리겔호프 놈들의 비겁한 간계 때문에 공작 부인께서 큰일 날 뻔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귀족이라는 자들이 어떻게 그런 시정잡배나 할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후안무치한 놈들 같으니라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사실 싱클레어 백작은 그 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쾌재를 불렀다.
‘이건 우리에게는 호재다!’
그의 예상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그 일 때문에 황제가 리겔호프가의 처분권을 루드윅 공작가에 주었고, 리겔호프가의 전원이 목이 잘려 황궁에 걸렸다는 소식도 듣고 온 참이었다.
그는 지금 너무 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뭐,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니 그 얘기는 그쯤 했으면 좋겠군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각하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황송하다는 듯 몸을 사렸지만 싱클레어 백작은 일이 아주 잘 흘러가고 있다고 여겼다.
그는 얼마 전에 완전히 손에 넣게 된 북부 철광석 유통권 얘기를 슬그머니 입에 올리며 함께 간 레일라에게 눈짓했다.
레일라는 킬리언을 흘끔대고 있다가 아비의 눈짓에 재빨리 조신한 척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각하. 그때의 그 얘기는 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때의 그 얘기라니요?”
“킬리언 군의…… 혼사 문제 말입니다.”
그 말에 킬리언의 눈매가 대번에 매서워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싱클레어 백작은 다 이해한다는 듯 인자하면서도 동정하는 표정을 지어냈다.
“자네가 리겔호프가의 여식과 정략 결혼해서 고생이 많았다는 얘기는 들었네.”
“그런 얘길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디서 들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세. 리겔호프가에서 철광석 유통권과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제 딸을 자네에게 들이민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건 사실이지만…….”
“루퍼스 리겔호프, 그 작자는 옛날부터 그렇게 간악했다네!”
싱클레어 백작은 킬리언이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는데도 말을 끊고는 제 할 말만 늘어놓았다.
“드디어 리겔호프 놈들이 다 처리되었으니, 자네도 새 아내를 맞아야지. 그래서 내가 전에 공작께, 부끄럽지만 내 딸 레일라를 추천드렸네.”
레일라는 뺨을 발긋하게 물들이며 킬리언과 눈을 마주치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참으려고 했지만 기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러나 킬리언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겨놓고는 루드윅 공작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버지. 지금 이 얘기가 사실입니까?”
“그런 제안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 얘기를 그냥 듣고만 계셨습니까? 제게는 이미 아내가 있는데요.”
그러자 싱클레어 백작이 다시 나섰다.
“정략결혼이라는 게 싫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귀족 간의 결혼은 반 이상이 정략결혼인 데다, 자네는 특히나 공작가의 자제 아닌가? 가문의 이익을 우선해야지.”
“내 기분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우리 레일라가 전부터 자네를 사모해 온 모양이더군. 자네를 충실히 뒷바라지하는 훌륭한 아내가 될 게야. 리겔호프의 그 탕녀 따위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
싱클레어 백작 딴에는 루드윅가의 원수나 다름없는 리겔호프가를 깎아내리기 위해 악담을 했지만, 킬리언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나빠졌다.
말릴 틈도 없이 입을 나불댄 싱클레어 백작을 보며 루드윅 공작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루드윅가의 며느리를, 감히 싱클레어 백작가가 모욕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