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서’ 부분부터 그의 귓가에 속삭였더니 슬슬 킬리언의 귓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검을 쥐고, 뻗고, 휘두를 때 움직이는 등과 어깨와 팔 근육이 정말 멋져요. 오랫동안 열심히 훈련해 왔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은데도 듣기 싫은 건 아닌지, 킬리언은 굳이 날 말리지 않았다.
다만, 지기는 싫었는지 괜히 비아냥거리기는 했다.
“남자의 몸을 관찰하는 데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있죠. 킬리언이 여자의 몸을 관찰하는 데 나름의 취향이 있듯이 말이에요.”
킬리언은 가녀린 리제를 사랑하는 사람답지 않게 내 몸의 ‘풍만한’ 부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걸 본인도 알고는 있는지, 킬리언의 얼굴은 이제 빈말로도 괜찮다고 못 할 만큼 벌게졌다.
도발할 땐 세상 엉큼하다가도, 이럴 때 보면 의외로 순진하다.
그런데 문득 그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런데 저를 훔쳐보셨다면…… 클리프도 봤겠군요?”
“아, 늘 함께 훈련하시니까요.”
“클리프의 몸도 그렇게 훑어보신 겁니까?”
“보이는 걸 안 보이게 할 수는 없잖아요.”
킬리언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리제를 좋아한다는 녀석이 왜 나한테까지 질투심을 드러내고 난리일까.
하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채 이 데이트를 끝내면 앞으로가 위험해지니 적당히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제 취향은 당신 쪽이지만요. 저는 둥그스름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이 좋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클리프의 근육 쪽이 좀 더 단련된 겁니다. 저는 조금만 게을러져도 살이 붙는 편이라.”
“하지만 킬리언 엉덩이가 좀 더 착 올라붙…….”
“호오…….”
어휴, 나도 모르게 사심 토크로 빠져 버렸다. 대화 주제를 왜 하반신까지 끌고 간 걸까.
나는 뭔가를 움켜쥐려는 것처럼 들어 올렸던 두 손을 조용히 내렸다.
“제 가슴이 마음에 든 건 줄 알았는데, 엉덩이 쪽이었습니까? 하…… 음탕하기가…….”
“뭐, 뭐, 뭐 어때요! 부, 부분데…….”
뻔뻔한 척 고개를 쳐들었지만 킬리언의 눈빛이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부부…… 맞습니다. 우린 부부죠. 상대의 가슴이든, 엉덩이든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는.”
“하, 하하. 그……렇죠.”
이제는 내 목덜미로도 열이 홧홧하게 올랐다. 이 주제, 이제 그만 얘기했으면 하는데…….
“바람이 선선해졌다지만 여름은 여름이네요.”
“그러게요. 좀 덥네…….”
대화 주제가 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부채를 파닥이는데 킬리언이 내 허리를 붙잡고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땀 좀 씻죠. 같이…….”
“네……?”
내가 황당해하는 사이 그는 멀리 있는 하녀를 불러 얼른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하녀가 달려간 사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허리를 껴안은 채 계속 산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히 15분이었다. 하녀들이 목욕물을 준비해 놓았을 시간 말이다.
“이제 좀 더 부부다운 일을 해보러 갈까요?”
킬리언이 내 허리를 붙들고 저택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거 어째 남편의 요구가 날이 갈수록 선을 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참 감사한 일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