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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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가 말한 호칭에 킬리언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사실 이상할 것 없는 호칭이었다. 저 역시도 늘 ‘그 여자’라고 불렀으니까.

“관심 없는 얘기니까 그렇지. 그 여자가, 왜?”

“오늘부터 리넌의 감시를 받으며 일하게 됐다던데.”

“그렇다는 것 같더라.”

“그래서 리넌한테 잠깐 들르라고 했어. 뭐 이상한 점 없었는지 물어보게.”

클리프는 우아한 동작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는 아직도 문서 유출 사건의 범인이 에디트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첫날부터 이상한 낌새를 보였을 리가.”

“그래도 혹시 모르지. 리넌은 상당히 예리하니까.”

그리고 잠시 후, 진짜로 리넌이 왔다.

“부르셨습니까.”

“바쁜데 미안하네, 리넌. 다름이 아니라…… 오늘부터 에디트를 감시하게 됐다지?”

킬리언은 클리프가 쓰는 단어들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감시라니.

물론 감시의 목적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일을 돕는 거였다.

심지어 에디트가 먼저 자신의 감시를 겸할 수 있는 사람을 붙여달라고 한 거고.

킬리언이 불만을 숨기느라 찻잔으로 입매를 가리는데 리넌이 특유의 무감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에디트 아가씨께서 만지는 서류를 제대로 파악해서 분실의 위험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에디트 아가씨께서 제 일을 도와주러 오신 거죠.”

“그게 그거지. 어쨌든…… 자네가 보기엔 어때? 의심스러운 낌새는 없던가?”

리넌은 에디트와 일했던 오전을 되짚어 보는지 잠깐 말이 없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잠깐 뵌 것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킬리언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긴장되어 차를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다.

“굉장히 꼼꼼하게 일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집중력이나 이해력, 판단력이 출중하시고 무엇보다 끈기가 있으시더군요. 제 사무실 환경이 귀족 아가씨 눈에 찼을 리 없는데, 아무런 불만 없이 성실히 일하셨습니다.”

“자네가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군. 그 여자가 자네 마음에 들려고 꽤 노력했나 보지?”

“글쎄요. 어쨌든 저는 오늘 오전밖에 그분을 뵙지 못했으니까요.”

“하긴…… 그래, 알았네. 다음에 자넬 또 부를지도 몰라. 그 여자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말게.”

클리프는 리넌을 독려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옆에서 리제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말했다.

“리넌이 에디트에게 반한 거 같아요. 저도 저분이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는 거, 처음 들어요.”

그 말에 클리프가 한숨을 쉬었다.

“리넌이 웬만해서는 감정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감정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리넌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에디트는 예쁘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죠.”

리제가 입을 열면 늘 사랑스럽기만 했는데, 킬리언은 오늘 처음으로 리제가 한 말에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서류상의 부부라지만, 그래도 남편인 내가 옆에 있는데 저런 말을…….’

아니, 이젠 서류상이라고만 하기도 뭣했다. 에디트와 잠자리까지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정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설마. 나는 리넌을 믿어. 리넌을 봐온 게 몇 년인데. 테오가 리넌을 얼마나 혹독하게 가르쳤는지 몰라서 그래?”

테오 필치는 자신의 후계자인 리넌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교육했다.

엄격한 공작마저 너무한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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