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부드러운 입술 표피 너머로 뜨거우리만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그의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늘 차갑게만 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체온과 체향은 왜 이렇게 따뜻한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단지 신체의 일부를 마주 댄 것뿐인데도 황홀했다. 머릿속이 그저 멍해질 정도로…….
잠시 그의 입술 위에 머무르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며 조심스럽게 숨을 뱉었다.
‘자, 이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나는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눈을 뜨면 경악에 찬 킬리언의 두 눈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나더러 발정이 났다느니, 창부라느니, 수치심도 모른다느니 하며 경멸할 테고, 내 팔뚝을 잡아 문밖으로 내칠 것이다.
그리고 순찰하던 경비병 둘이 그 꼴을 보고 당황하겠지.
뭐, 어쩔 수 없다.
나는 망신 당할 각오를 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역시…….’
눈을 뜨니 한 뼘도 안 되는 사이를 두고 킬리언의 놀란 두 눈이 보였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미, 미안해요. 그…… 내가 알아서 돌아갈게요. 그러니까…….”
뭔가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했는데 나도 순간 당황했는지 아무 말이나 막 나오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던 킬리언이 피식 웃으며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내 팔뚝을 덥석 잡았다.
“아닌 척은 다 하더니, 이젠 연극마저 못할 정도로 발정이 나셨습니까?”
아, 그래. 저 비슷한 대사였지, 참.
“아니, 저는 그냥 뽀뽀만…….”
“뭐, 좋습니다.”
“예……? 뭐, 뭐가요?”
내 팔뚝을 잡은 손에 힘을 전혀 빼지 않은 채로, 그가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래, 이렇게 해서 나를 문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야 하는데 왜 날 침대로 던지니?
“어디, 리겔호프의 꽃뱀답게 나를 만족시켜 보십시오. 또 모르잖습니까. 몸정이라도 생길지.”
“예……?”
어? 왜 이래?
이거 아니잖아!
왜 이제야 원작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건데!!
* * *
에디트가 쓰러지던 날, 킬리언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에디트가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녀를 범인으로 몰 증거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훔쳐본 그 여자의 일기 때문인지.’
그 여자의 말대로 남의 일기장은 함부로 훔쳐보면 안 되는 게 맞았다.
그걸 읽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분이 찝찝해질 일도 없었을 텐데.
-오늘 아침에도 연무장 옆길에 숨어서 킬리언을 훔쳐봤다.
몇 번을 보는데도 볼 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 몸은 또 왜 그렇게 좋아? 떠올리니까 또 침 나온다.
역시 내 취향은 클리프보다는 킬리언이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화가 나기도 했고 동시에 좀 웃기기도 했다.
제 앞에서는 그렇게 도도한 척 굴더니, 뒤에서는 이렇게 앙큼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게.
그러나 다음 내용을 읽었을 때, 그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의 미모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침 리제가 지나가다가 손을 흔들었는데, 킬리언이 환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