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일부러 저 찾으러 오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이 먹고 그런 거에 설레냐고 비아냥댔는데 에디트는 마치 사라져 버릴 사람처럼 말했다.
“내가 사라진 자리를 신경 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죠. 안 그래요?”
그녀의 외로움 가득하던 표정을, 킬리언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에디트에 대해 누그러지려던 마음은 늦은 시간 찾아와 어렵게 입을 연 리제의 말에 경직되고 말았다.
“이건 제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아까 에르메니아 백작 댁에서 말이에요.”
“무슨 일 있었어?”
“그게…… 클리프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다가, 리겔호프 백작 후계가 리겔호프 백작께 루드윅 공작가 운운하던 걸 분명히 들었거든요.”
“뭐……?”
리제는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라는 킬리언의 부탁에 말을 이었다.
“정말로 우연히 보게 된 거라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어요. 클리프도 못 보고 지나갔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루드윅 공작가라는 말과 에디트의 이름을 들은 것만큼은 확실해요. 그가 어제 에디트를 만났던 걸까요?”
싸늘한 불안감이 가슴 한복판을 차게 식혔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부터 셰인이 웬 패악스러운 하녀 하나를 데리고 오더니 그 하녀를 굳이 에디트 옆에 붙여야겠다는 것 아닌가.
‘미리 입을 맞춘 건가…….’
결혼 전부터 에디트한테 하녀를 붙이려고 애쓰던 리겔호프 백작이 떠올랐다.
셰인이 데려온 하녀는 언뜻 보기에도 보통 하녀답지 않았다.
세상 어떤 하녀가 공작 일가를 앞에 두고 그렇게 패악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에디트가 셰인에게 제 처지를 하소연했을 수도 있지. 그래서 루드윅 공작가에 화가 난 셰인이 하녀를 붙여주겠다고 한 거고, 거기에 에디트가 감동해서 눈물을 보였을 수도…….’
뺨이 붉어졌던 건 그녀의 말대로 정말 햇빛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인지, 에디트가 몇 번이나 싫다고 거절하는 것도 다 연기로만 보였다.
에디트를 핍박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저 하녀를 받아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으니까.
‘감시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에디트의 저 태도가 연기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다음 날부터 소피아는 에디트의 전담 하녀가 되었고, 공작가에서는 은밀히 그들 주변에 감시자를 늘렸다.
* * *
전생에서도 몇 번 해본 적 있는 생각인데, 에디트로 살면서는 하루가 멀다고 곱씹는 생각이 있다.
‘일할 때가 차라리 낫다.’
나는 소피아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오전 업무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게다가 리넌의 사무실에 오면 적어도 차와 과자를 먹을 수 있지!’
원래 일할 때는 다과를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배가 고프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소피아가 나를 굶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다과가 입에 잘 맞으시는 모양입니다.”
리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 하하, 그, 그러게요. 오늘따라 맛있네…….”
나는 접시에 놓인 쿠키와 마들렌을 다 집어 먹으려다가 양심상 리넌의 몫으로 한 개씩 남겨놓았다.
그런데 내가 또 추잡스럽게 남은 걸 애타는 눈빛으로 쳐다봤나 보다.
“다 드셔도 됩니다.”
“어? 리넌은요?”
“저는 원래 단 걸 안 좋아합니다.”
응, 그렇게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