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서점>은 인기 있는 로맨스 소설 신간이 가장 빨리 들어오고요, <피앙세>에서는 정말 예쁜 보닛이랑 양산을 많이 팔아요. <분홍케이크>에서는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많이 팔고요…….”
리제는 의외로 르벨마리 거리에 대해 빠삭했다. 많이 다녀본 건가 했는데 그녀가 의외로운 이야기를 했다.
“석 달에 한 번씩 <르벨마리 매거진>이 발간되거든요. 거기의 가게 소개를 외우고 있는 것뿐이에요. 언젠가 나도 친구가 생기면 꼭 같이 가봐야지, 하고…….”
가슴이 아프게 찡 울렸다.
공작 부인이나 클리프의 비호를 받으며 사교계에 나가면 누구나 리제를 칭송한다. 특히 나이 지긋한 부인들은 리제를 꽤 참하게 보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또래 아가씨들은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리제는 ‘사생아 주제에 클리프 님과 킬리언 님을 홀린 천한 계집’일 뿐이었다.
‘얼마나 친구가 갖고 싶었으면 날 데리고 왔을까.’
아무리 루드윅 공작의 부탁이라지만, 자신의 서브 남주를 ‘빼앗아 간’ 나를 말이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리제는 킬리언을 되찾을 생각도 접은 것 같았다. 사실 킬리언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리제 본인의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원작자의 농간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리제! 우리 저기 가봐요.”
나는 리제의 손을 잡고 함께 <피앙세>로 향했다.
리제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씌워보며 제일 잘 어울리는 보닛을 찾아주기도 했고, 그녀 앞에서 양산 하나를 펼쳐 빙그르르 돌아 보이기도 했다.
리제의 표정도 점점 풀어지더니 나중에는 내 팔에 답삭 매달리며 맑은 목소리로 웃기도 했다.
‘좀…… 기분 좋은데?’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또래 친구를 가져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분명 대학 때까지는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나둘씩 멀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만 가면 만날 수 있었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졸업 후에는 친구들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했고, 나는 그 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리제와 함께 마음껏 돈을 쓸 수 있었다. 그것도 공작의 돈을!
‘다시 한번, 귀족 빙의물 만세!’
그렇게 한참 돈과 친구가 함께하는 삶을 즐기는데 주변을 쓱 살피던 리제가 내 귓가에 소곤댔다.
“에디트. 혹시, 조금 야릇한 로맨스 소설 좋아하세요?”
“어휴, 없어서 못 읽죠. <그레이엄 부인의 은밀한 유혹> 읽어보셨어요?”
“어머! 에디트도 그거 읽어봤어요?”
“안나가 추천해 주더라고요. 아주 후끈하던데요?”
나와 리제는 다시 키득거렸다.
“사실 아까 말씀드린 <달빛서점>이 로맨스 소설로 유명하긴 한데요, 야릇한 로맨스 소설 쪽으로는 <밀레인 서점>이 더 유명하거든요. 같이 가보실래요?”
“정말 유용한 정보로군요, 리제. 얼른 가보도록 해요.”
나는 콧김을 뿜을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난번에 읽은 <그레이엄 부인의 은밀한 유혹>은 21세기 한국에서 출간해도 히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19금 로맨스 소설이었다.
이 시대에는 19금 규정이 없어서 그런지 씬 부분도 아주…… 아주 화끈했고.
“그…… 하녀들이 알면 좀 부끄러우니까, 우리끼리만 가요. 클리프한테 이 소식이 들어가면 제가 좀 곤란해지거든요.”
리제는 쩔쩔매며 손을 모아 잡았다.
허 참 나, 클리프 자식, 독점욕과 집착이 심하다고 표현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자기 여친이 19금 로맨스 소설 읽는 것도 질투하냐?
하지만 온종일 집에만 처박혀 살아야 하는 귀족가 여인들이 19금 로맨스도 못 읽는다면 그건 너무한 처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