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게 다 뭐야?”“클리프!”
풀지도 않은 상자들이 쌓인 방에 들어서며 클리프가 짐짓 감탄하는 척했다.
오늘 엄청난 선물 더미와 함께 귀가한 리제는 꾸러미들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피곤했나 보네.”
“저도 모르게 좀 무리했나 봐요.”
기운 빠진 미소로 화답하는 리제 앞에 앉으며 킬리언은 선물 더미를 살폈다.
“킬리언이 네 환심을 사려고 오늘도 애쓴 모양이지?”
“그런 거 아니에요. 킬리언 마음속에는 에디트뿐이니까 그런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요! 오늘도 그냥 저 혼자 나갈 걸 그랬어요. 괜히 킬리언을 귀찮게 한 것 같아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리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둠이 내려앉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클리프는 그런 리제를 뒤에서 감싸 안으며 그녀의 목덜미를 입술로 지분거렸다.
“리제.”
“네, 클리프.”
“킬리언이 신경 쓰여?”
“킬리언한테도, 클리프한테도 늘 신경 쓰고 있어요. 물론 저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지만…….”
“그런 말 아니라는 거 알잖아. 너의 단 한 사람이 나일 수는 없느냐는 말이야.”
다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끓어 넘치지 않게 애써 억누르고 있는 독점욕과 정염이 숨어 있음을, 리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클리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알지. 아는데…….”
클리프의 금안이 겨울밤 달빛처럼 차가워졌다.
“난 네가 온전히 나만을 믿고 내게만 기대줬으면 좋겠어, 리제.”
“그러고 있어요.”
“아니. 넌 지금, 킬리언에게 일말의 서운함을 느끼고 있잖아.”
리제의 귓불을 입술로 살짝 물면서 클리프가 속삭였다.
리제는 부끄러운 듯 어깨를 움츠렸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운함이라니요? 제가 왜…….”
“사비나 말이야. 킬리언이 사비나 얘길 듣고도 무심해서 서운해진 거 아니야?”
클리프는 최근 갑자기 주변 하녀들에게 에디트가 리제를 죽이려 했다는 얘길 하고 다녔다는 하녀에 대한 말을 꺼냈다.
“사비나, 걔 말이, 자기가 분명 봤대요. 에디트 아가씨가 리제 아가씨께 드리는 자수 실에 독을 바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한 거지?”
“그, 그거야 저는 모르죠. 애가 갑자기 없어져 버렸으니…….”
사비나의 행방불명을 알리러 왔던 하녀는 그녀의 실종에 분명 에디트가 관련 있을 거라면서 씨근덕댔다.
하지만 에디트를 의심하기 전에 사비나의 행동부터가 이상했다.
범인을 찾기 위해 저택 안팎을 쥐잡듯이 조사했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사건을 완전히 묻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주변에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
게다가 언제, 어디서 봤는지, 에디트가 바른 게 독인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에디트가 뭔가를 바르고 있던 그 물건이 리제에게 가는 자수 실인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었다.
“그 하녀의 이야기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왜 이제야 갑자기 나타나서…….”
킬리언에게 사비나에 관한 이야기를 몰래 털어놓은 척한 리제였지만, 사실 리제가 클리프 모르게 뭔가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지금 사비나 주변에서 그 얘기를 들었다는 하녀들을 조사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