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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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이네…….”

전쟁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었다.

피로 물든 듯 울긋불긋한 하늘과 피 흘리며 널브러진 수많은 병사의 시체는 전쟁의 비극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그 위에 선 전쟁의 신 같은 남자의 두 눈에는 그 모든 비극을 끝내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앞발을 높게 쳐들고 길게 울부짖는 말의 생동감, 병사들을 이끄는 남신(男神)의 얼굴에 드리운 승리에의 의지와 막중한 책임감, 그만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 개개인의 다양한 표정, 농기구를 들고서라도 그들을 돕고자 하는 백성들의 이를 악문 얼굴들…….

이런 엄청난 작품을 보면 그저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누군가 나 대신 말을 해줬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자세가 참으로…… 파격적이군요.”

“어?”

생각지도 못하게 킬리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제가 제 집안의 미술품을 감상하러 온 게 뭐가 이상합니까?”

“아…… 그건 또 그렇네요.”

“하긴, 리겔호프가는 예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당신으로서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할 만도 하겠군요.”

짜식. 까칠하게 굴긴.

‘느 집엔 이런 거 없지?’ 하며 약 올리는 점순이도 아니고.

킬리언에게 목숨을 구제받아야 하는 입장만 아니었으면 잘난 척한다고 톡 쏘아붙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난 지금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거고.

“말씀대로예요. 심지어 한 달에 한 번씩 작품을 바꿔 건다죠? 정말 엄청난 소장품들이네요.”

놀랍다는 듯 우쭈쭈해 줬는데도 킬리언의 표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작품을 감상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대신 킬리언은 그 커다란 작품을 함께 올려다보며 물었다.

“압도되는 느낌이네요. 이 작품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데, 한 사람의 예술가가 상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해요.”

킬리언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조금 더 용기를 얻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그림의 주인공인 저 남신에게서는 이 비극을 끝내고자 하는 숭고한 의지가 엿보여요. 모두가 그를 우러르며 따르고 있는데, 그는…… 타인의 찬사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승리하더라도 그는 마냥 기뻐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전쟁이란 승리해도 기쁠 수만은 없는 일일 테니까요.”

“전쟁은 어떻게 포장해도 비극이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킬리언은 내 쪽을 흘끗 보더니 뒤늦게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할아버지께서 야녹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것을 기념해 그린 작품입니다. 병사들을 이끄는 남신의 모델이 바로 제 할아버지죠.”

“아……!”

“설마 했는데 전혀 몰랐던 모양이군요.”

“네. 몰랐어요.”

산뜻한 인정에 킬리언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미술품을 즐기신다는 얘기는 전혀 못 들어봤는데,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나이가 들다 보면 취향도 바뀌는 법이잖아요. 전에는 그다지 관심 없었는데, 결혼 전부터 점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공작저에 이런 곳이 있다니,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나는 대충 둘러대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다음 작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좋아하는 작가가 있습니까?”

킬리언이 의외로 내 취향을 물어왔다. 그와 가까워지기 좋은 기회 같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세계의 작가들이라고는 아무도 모른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