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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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킬리언! 저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어딜 다녀오십니까?”

“리제를 병문안하고 오는 길이에요.”

리제에게 다녀왔다는 소리에 킬리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득점 포인트인가?

킬리언은 딴청을 피우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설을 늘어놓았다.

날씨 얘기나, 공작 부부의 소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나에 대한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조금 늘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침 산책은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식후에 한 번씩은 정원 산책길을 한 바퀴 정도 걷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역시 그럴까요?”

사실 굶다가 먹기 시작한 이후로 좀 과하게 먹었는지, 로판 세계 버프로도 내가 살찌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래봤자 옆구리살이 살짝 잡히는 정도긴 한데…….

“기분 전환도 되고, 군살이 붙는 것도 막아주죠.”

“저, 살쪄 보여요?”

“으음, 네. 전보다는 조금 찌신 것 같군요.”

킬리언의 말에 나는 충격받았다.

내게 관심 없는 킬리언이 보기에도 살이 쪘다면 도대체 얼마나 쪘다는 소린가!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좀 걷다 오는 게 좋겠네요.”

“같이 가드리죠.”

“네……?”

“산책하신다니까, 호위 겸?”

순간 등줄기가 싸해졌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방금 킬리언의 발언이 좀 모욕적이네요. 제가 살이 찌면 얼마나 쪘다고 운동을 하라는 둥…….”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오늘은 산책하지 않겠어요. 다음에 할게요.”

킬리언이 어금니를 꽉 다무는 게 보였다.

와, 기출 변형에 걸릴 뻔했네.

내가 아까 좋다고 달라붙었다면 날 보는 시선이 아주 싸늘해졌겠지?

“제 표현이 오해를 산 것 같군요. 전에 살이 많이 내렸을 때보다 살이 올랐다는 거지, 살을 빼야 할 정도로 살이 쪘다는 소린 아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저도 오해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그다지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물론, 제 건강을 신경 써준 건 고마워요, 킬리언.”

꼬박꼬박 감사 인사 붙여넣고.

이 정도면 모범 답안 아닌가?

“……알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나는 서비스직 마인드로 생긋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후우, 오늘의 시험도 통과!’

나는 안나가 안 보는 틈을 타 혼자서 기쁨의 댄스를 추다가 문득 나를 쳐다보던 킬리언의 눈빛이 떠올라 멈췄다.

마치 뭔가가 금방이라도 뚝 끊어질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제 고지가 머지않은 게 분명해!’

의심의 막바지일 것이다.

‘이럴 리 없는데, 이 여자라면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텐데.’ 하는 마음으로 나를 시험해 보는 것일 테지만,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으니 의심을 의심하게 된 상태겠지.

‘이 고비를 넘으면, 그때는 킬리언이랑 같이 차를 마셔도 되는 걸까? 같이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싶은데…….’

내가 소문처럼 음탕하고 몸을 막 굴리는 여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 나 좀 사람 취급해 줄래?

나 진짜 서럽다고. 흑.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