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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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몸만 다 나으면, 곧바로 라이젠으로 갑시다. 당신이 더는 상처 받을 일 없고, 우리가 함께 키워나 갈 땅으로.”

“정말 저로도 괜찮겠어요?”

“뭘 묻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주가 아내를 영지로 데리고 가는데, 다른 기준을 또 충족시켜야 합니까?”

“아니, 뭐, 그렇다면 됐고요.”

나로서는 킬리언에게 기회를 충분히 줬다.

나중에 그가 후회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킬리언의 탓이다.

* * *

어둑한 방 한편에서 길게 한숨 소리가 났다.

방이 어두운 것은 해가 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신경쇠약에 걸린 듯한 리제가 커튼을 전부 쳐놓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물어봤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리제. 너는 왜…… 에디트를 없애려고 했어?”

한숨 소리의 주인공인 클리프는 이불을 고치 삼아 그 안에 틀어박힌 리제에게 낮게 물었다.

“……당신은 이해 못 해요.”

간신히 대답한 리제의 말끝에는 또 물기가 묻어났다.

클리프는 다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제가 제 방에만 틀어박혀 지낸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지하 감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왜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냐고 호소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벌벌 떨었다. 그러다가 공작까지 와서 물었을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리제의 행동은 누가 봐도 수상했고, 원작의 흐름에 더 이상 지배당하지 않는 루드윅가 사람들은 전처럼 그녀를 무조건 감싸주지 않았다.

이제까지 에디트를 향했던 의심이 리제에게 쏟아졌고, 조목조목 따지는 추궁에 리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리제를 딸처럼 아끼고 그녀의 말을 무조건 믿어 주던 루드윅 공작의 배신감과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격으로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공작 부인에게는 차마 다 얘기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클리프만큼은 이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었든지 간에 리제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내가 널 위하는 데 이해 따위는 필요 없어. 네가 원한다는 것만 알았더라면, 나는 기꺼이 도왔을 거야. 왜 나한테까지 말해주지 않았어?”

훌쩍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위해줬을까요?”

“당연하지. 에디트가 호수에 빠지기 전날 밤,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까지 간 것 같아?”

그 소리에, 드디어 리제의 머리가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알고…… 있었다고요?”

킬리언의 요트 조종간을 고장 내기 위해 사람을 보내면서 관리인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해 클리프를 거기까지 보낸 건 온전히 자신의 힘이었다고 믿었다.

“하필이면 킬리언과 에디트가 뱃놀이를 하러 가기 전날 밤에 갑자기 내 요트에 귀걸이를 흘린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네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지.”

리제는 기가 찼다.

그러나 클리프의 고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실 에디트에게 뱃놀이를 제안한 것도, 그랬다는 걸 너한테 얘기한 것도 다…… 네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어.”

“뭐라고요?”

“물론 에디트를 죽이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했지.”

자신이 여태 갖고 놀았다고 생각한 상대가 반대로 이쪽의 의도를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 기꺼이 그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랬다간 네가 내 앞에서마저 완벽하게 널 숨겨 버릴까 봐.”

18Où les histoires vivent. Découvrez mainte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