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리, 리제가 가져온 저 탕파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추워서…….”
아까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난 탓인지 이제는 콧물까지 나왔다.
그리고 킬리언은 그제야 내 상태에 대해서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입으나 마나 한 코트는 벗어요! 아무리 위장을 하려 했다지만, 어디 그런 걸……!”
킬리언은 나더러 코트를 벗으라 하고는 그 자신도 입고 있는 털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그걸 내게 걸쳐 주다가 휘청거리는 날 붙들기 위해 내 팔뚝을 잡았다.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소피아에게 채찍으로 맞은 곳이라 제일 아픈 곳이었기 때문이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파서 헉헉대고 있는데 킬리언의 안색이 나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당장 가서 의원을 부르라고 해! 어서!”
그의 외침에 멀거니 서 있던 기사 중 막내로 보이는 이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리제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킬리언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자해라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피를 본 상태였으니까.
“리제, 너도 가서 의원에게 보여야지.”
클리프가 그녀를 감싸며 달래듯 말했지만 리제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휙 뒤집히는 듯하며 현기증이 일었다.
킬리언이 나를 안아 든 것이었다.
“도대체 어딜 얼마나 다친…….”
그의 불평인지 걱정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는 거기까지밖에 들을 수 없었다.
온몸이 바닥으로 쑥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다시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마음이 편했다.
내가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킬리언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마음 편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쓰러진 에디트를 안고 감옥에서 나와 자신의 방에 눕히는 내내, 킬리언은 지독한 후회와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이 루드윅 공작가에서 제일 멍청한 건 나야!’
에디트의 상황에 너무나 무지했던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스스로를 힘껏 쥐어패고 싶을 정도였다.
리제에게도 분노가 일었다.
리제가 왜 에디트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만약 그때 에디트의 누명을 벗겨내지 못했다면 에디트는 다시 처형장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었다.
아니, 에디트 때문에 리제가 끔찍한 짓을 당할 뻔했다고 믿고 있던 클리프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에디트의 목을 쳤을 것이다.
참담한 생각에 빠진 채 에디트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에디트를 체포했던 기사 중 하나가 싸구려 가죽 가방을 가지고 들어왔다.
“마차역에서 찾아냈을 당시 에디트 아가씨께서 갖고 계시던 가방입니다.”
“누가 뒤졌었나?”
“아닙니다.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알았다. 두고 나가라.”
기사가 인사하고 나가자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킬리언은 에디트를 한 번 흘끗 본 뒤 조심히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물건을 확인한 순간, 그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 세상에……!”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툭 떨어졌다.
가방에 싼 짐의 맨 위에, 다 식어 빠진 작은 감자 세 알이 종이에 감싸여 있었다.
![](https://img.wattpad.com/cover/338727855-288-k808966.jpg)